스브스프리미엄

[스프] 리나 칸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은 당신의 월급 인상과 혁신을 가로막는 주범입니다."

By 리나 칸(뉴욕타임스 칼럼)


오프라인 - SBS 뉴스

*리나 칸은 연방거래위원회(FTC, Federal Trade Commission) 위원장이다.

정치적 자유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자유는 미국 건국 정신의 핵심을 이루는 가치다. 만약 당신이 자유롭게 직업을 바꾸지 못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고를 수 없다면, 당신은 진정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도 미국 노동자 수천만 명은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고용주들이 노동자와 맺는 고용 계약서에 집어넣어 둔 조항 하나 때문이다. 바로 경쟁업체 이직 금지, 줄여서 경쟁금지(noncompete) 조항이다.

당신이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을 적용받는다는 건 곧 지금 일하는 회사의 경쟁사로 이직할 수도, 지금 회사와 경쟁할 만한 회사를 창업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보통 조항에는 특정 지역 안에서, 또는 반경 얼마 이내의 경쟁사로 이직을 금지한다거나 이직 혹은 창업할 수 없는 기간이 명시돼 있다. 당신이 경쟁금지 조항에 구애받지 않을 먼 곳으로 이사하거나 적잖은 위약금을 내는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지 않는 한 이 조항은 실질적으로 당신을 지금 회사에 묶어둔다. 이는 곧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이 개인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쟁금지 조항이 미치는 종합적인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실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이 조항은 우선 전반적인 경제에 막심한 해를 끼친다. 심지어 당신의 고용계약서에 경쟁금지 조항이 없더라도, 당신의 월급은 경쟁금지 조항 때문에 낮게 책정됐을 수 있다.

오랫동안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은 회사의 중요한 기밀을 확인할 수 있는 고위 임원급 인사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지난 2~30년 사이에 경쟁금지 조항이 적용되는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기업의 이사들이 아니어도 경쟁금지 조항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노동자의 20%에 해당하는 약 3천만 명이 경쟁금지 조항의 적용을 받는다.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목 관리사 혹은 정원사, 일용직 노동자 등 과거에는 경쟁금지 조항이 적용되지 않던 직종에서 경쟁금지 조항이 남발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와 언론 기사가 줄을 잇는다.

당장 내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연방거래위원회는 지난주, 미시간주에 있는 한 경비업체와 법적 공방 끝에 합의를 봤다. 이 업체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주는 직원과의 고용 계약서에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을 넣었다. 조항에 따라 노동자는 업체 반경 160km에 있는 비슷한 회사로 퇴직 후 2년 동안 옮길 수 없었다. 노동자가 경쟁금지 조항을 어기면 회사에 무려 10만 달러나 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경쟁금지 조항은 이론적으로는 투자와 혁신을 촉진하는 훌륭한 장치 구실을 한다. 경쟁금지 조항이 있어서 기업은 직원들이 중요한 영업 기밀을 들고 달아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이론적으로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자율적으로 제약하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대가로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론과 아주 딴판이다. 지난 몇십 년간 미국에서는 주 법원의 판결에 따라 주마다 고용 계약에 경쟁금지 조항을 넣을 수 있는 범주와 분야 등이 제각각이었다. 이로써 제도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자연 실험이 일어난 셈이 됐다. 연구진은 주마다 제도가 어떻게 달랐는지, 그로 인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분석해 인과적 추론(causal inferences)을 할 수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연구 결과

를 보면,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 때문에 모든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 체계적으로 억제됐다. 경쟁금지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 노동자까지 영향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시장의 논리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당신이 경쟁금지 조항 때문에 지금 회사에 묶여있다면, 당신이 떠나지 못한 그 일자리는 누군가에게 열리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노동자가 이직하고 싶어도 이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용주는 임금을 올려주거나 다른 혜택을 제공해 노동자를 회사에 붙들어놓을 필요가 없어진다. 이런 이유로 모든 노동자의 임금이 내리거나, 최소한 오르지 않게 된다.

설문조사 결과도 사람들의 경험과 일치한다. 경쟁금지 조항을 고용계약서에 넣는 대가로 급여를 더 받거나 혜택을 늘리는 등 고용주를 상대로 제대로 된 협상을 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노동자가 고용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면 그제야 경쟁금지 조항이 포함된 세부 계약서를 꺼내 드는 고용주도 많았다. 이미 고용 계약에 서명한 노동자에게 협상의 여지는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고용 계약서들을 분석한 결과 연방거래위원회 소속 경제학자들은 경쟁금지 조항이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얼마나 억누르고 있는지 보수적으로 추산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3~4%였다. 매년 2,500~2,960억 달러의 임금을 기업은 아낀 셈이고, 반대로 노동자들은 받을 수 있는 돈을 못 받은 셈이다. (17일 현재 환율로 2,960억 달러는 약 367조 원이다.)

임금을 억누르는 효과가 있더라도 경쟁금지 조항이 혁신을 일으켜 전체적인 경제에 활력소가 된다면 그나마 좀 나았을 거다. 이 조항 덕분에 회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것저것 도전하게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연방거래위원회가 확인한 현실은 이론과 전혀 달랐다. 사실 그 이름이 암시하듯 경쟁금지 조항은 시장의 경쟁을 억제한다. 역동적인 경쟁을 촉진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환영받는 환경을 만들기는커녕 경쟁금지 조항은 기존 업체가 진입장벽을 쌓고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는 도구로 쓰이곤 한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혁신을 주도한 핵심은 스타트업이었다. 그러나

경쟁금지 조항

은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고 스타트업의 등장을 가로막는다. 생각해 보시라. 우수한 인력들이 전부 다 기존 회사에 묶여서 이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업이 무슨 수로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을 벌일 수 있겠는가? 새로 자기 사업을 시작하고 싶은 창업가도 경쟁금지 조항에 손발이 묶인다면 창업에 나설 도리가 없다.

결국,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이 미친 영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경쟁금지 조항은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경쟁을 저해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가로막는다. 심지어 몇몇 대기업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의료보건 분야에서는 경쟁금지 조항으로 인해 경쟁이 사라져 소비자가 더 비싼 값을 내고 서비스를 받게 됐다는

연구

도 있다.

사실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은 100년도 더 전에 의회가 통과시킨

연방거래위원회법(F.T.C. Act) 5조

에서 정부가 예방해야 하는 행위와 상당 부분 겹친다. 그래서 연방거래위원회는 이달 초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을 고용 계약에 포함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제안했다. 우리는 경쟁금지 조항을 법이 금지하는 "불공정 경쟁 행위"로 규정했다. 시행령은 청소부, 경비원, 간호사, 엔지니어, 기자 등 모든 직업에 적용된다. 고용주들은 앞서 경쟁금지 조항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고용 계약에 이 조항을 넣은 적이 있다. 그래서 시행령은 현재 고용 계약에 경쟁금지 조항이 포함된 경우에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노동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또한 경쟁금지 조항이 이제는 무효라고 고지하도록 규정했다.

경쟁금지 조항이 사라지면 기업들이 영업 기밀을 유지하지 못해 큰 피해가 발생할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기밀 유지 협약이나 기업 비밀 유지법 등 꼭 지켜야 할 영업상의 기밀을 보호해 줄 규정은 기존 법 중에도 얼마든지 있다.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은 너무 포괄적으로 이 원칙을 마구 적용하다 보니, 전반적인 경제에 필요 이상으로 큰 부담만 지웠다.

경쟁금지 조항이 없는 세상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캘리포니아주를 보면 된다. 캘리포니아주는 19세기부터 경쟁업체 이직 금지 조항을 불법으로 규정해 금지해 왔다. 경쟁금지 조항이 없으면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경제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 앞에서는 곧바로 반증 될 주장이다.

오히려 미국과 전 세계 테크 산업을 이끄는 실리콘 밸리가 지금의 대성공을 이룬 핵심적인 요인으로 기업이 노동자에게 경쟁금지 조항을 강요할 수 없던 점을 꼽는 사람들도 있다. 로날드 길슨 교수를 비롯한 학자들이

주장하듯

기술의 발전은 기존 회사와 스타트업 사이에 노동자와 지식,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할 때 일어난다. 경쟁금지 조항을 통해 노동자를 한 회사에 가두면 기술의 발전도 함께 막혀버린다.

오프라인 - SBS 뉴스

**'보러가기' 버튼이 눌리지 않으면 해당 주소를 주소창에 옮겨 붙여서 보세요.

댓글
댓글 표시하기
스브스프리미엄
기사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