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갈 때까지 카메라 앞에"…'영원한 현역 배우' 꿈꾼 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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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원로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는 1960∼197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1세대 여배우이자 영원히 '현역 배우'로 살고 싶어 했던 진정한 영화인입니다.

윤정희는 1960년대 문희, 고 남정임과 함께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렸습니다.

데뷔작 '청춘극장'(1967)에서는 1천200대 1이라는 경이로운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역을 따냈습니다.

'청춘극장'은 서울 개봉관 한 곳에서만 2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고, 윤정희는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 영화로 윤정희는 대종상 신인상, 청룡영화제 인기상 등 시상식을 휩쓸었습니다.

이후 '안개', '그리움은 가슴마다', '지하실의 7인', '독짓는 늙은이', '무녀도', '효녀 청이', '화려한 외출', '위기의 여자', '만무방' 등 30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숱한 히트작을 남겼습니다.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로 영화계를 사로잡았던 윤정희는 마냥 예쁘기만 한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안개'(1967)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성을 유혹하는 인숙, '독짓는 늙은이'(1969)에서는 시골 아낙네의 순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남성을 향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옥수를 연기했습니다.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전면에 내세운 '야행'(1977)에서는 남성을 적극적으로 유혹하면서도 자신이 원할 때 홀연히 떠나는 주인공 현주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모범운전사 갑순이'(1972)에서는 애인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택시운전을 하는 옥순으로 분하기도 했습니다.

고 신상옥 감독은 "파격적 캐릭터의 여주인공은 윤정희가 아니면 안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배우 신성일과는 '영혼의 단짝'으로도 불립니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작품은 '내시'(1968), '극락조'(1975) 등 약 100편에 달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활동이 뜸했지만,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로 영화계에 복귀해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윤정희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작품으로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았습니다.

'시'는 홀로 남겨진 손자를 돌보는 예순 넘은 노인 미자가 문화센터의 시를 쓰는 강의를 듣는 이야기로, 윤여정은 미자를 연기했습니다.

극 중 미자는 공교롭게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치매 환자로 나옵니다.

윤정희는 최고 인기를 누리던 19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했습니다.

독일 뮌헨에서 윤이상 감독의 오페라 '심청이' 관람을 하러 갔다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세기의 러브스토리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함께하며 문화계 '잉꼬부부'로 통했습니다.

말년에는 10여 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2021년에는 윤정희의 동생이 백건우가 윤정희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백건우는 이를 전면 부정했습니다.

윤정희는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섰을 때는 연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행사에서는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카메라 앞에 서겠다", "제 직업은 영원하다"라고 말하며 현역 배우로 계속 활동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앞서 2010년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도 "아흔 살까지 배우를 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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