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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오늘날에는 작은 키가 더 유리하다

By 마라 알트만 (뉴욕타임스)


오프라인 - SBS 뉴스

*마라 알트만(Mara Altman)은 "육안으로 하는 해부학(Gross Anatomy)"의 저자다.

내 키는 정확히 5피트다. 미터로 환산하면 152.4센티미터. 키가 크면 좋다는 생각은 내 기준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폐기됐어야 하는 환상 속 이야기다.

만약 큰 키가 생존에 도움이 된다면 높이를, 장신을 찬양하는 것이 일리가 있다. 매일, 매 순간 목숨이 오가는 돌발상황이 일어날 수 있던 선사시대를 생각해보자. 그때는 키 큰 사람이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데 유리했고, 사냥에서도 두각을 보여 식량을 넉넉히 가져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포장 용기에 든 고기를 사서 집에 가져가려면 큰 키도, 장대한 기골도 소용없다. 그보다는 사무실 의자에 오래 버티고 앉아있을 체력이 있는 사람이 낫다.

사람의 키에 관한 논의는 지금, 이 순간도 활발히 이뤄진다. 평균 신장이 한 국가의 번영과 한 사회의 공정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도 많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키에 더 관심이 많다. 현대인은 다른 사람이나 동물을 때려눕히지 못해도 생존할 수 있다. 물론 남들보다 더 크고 힘이 세면 여전히 좋을 때도 있지만, 총과 드론이 있는 시대의 싸움을 생각해보면, 키가 크면 그저 더 도드라지는 표적이 될 뿐 별로 유리할 게 없어 보인다.

스티븐 홀 기자가 쓴 "크기가 중요하다(Size Matters)"를 보면, 18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프레데릭 윌리엄 왕이 거대한 병사들을 모으고 뽑아 "거인 부대"를 창설한 이야기가 나온다. 거인 부대를 향한 윌리엄 왕의 집착은 "중세 이후 최초로 큰 키를 향한 열망이 드러난 사례"로 꼽힌다. 이때부터 큰 키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그 여파가 지금도 남아있다.

사람들의 소망과 거기서 비롯된 편견은 한 번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자다가도 생각나는 광고 문구처럼 우리 뇌리에 똬리를 튼 생각 때문인지 사람들은 선거에 출마한 후보 중에 키 큰 사람한테 표를 더 준다. 키가 크면 훌륭한 지도자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키가 큰 것과 좋은 배우자가 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지만, 어쩐지 배우자를 고를 때도 키가 요건에 드는 경우가 많다.

경제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키가 6피트 8인치, 2미터가 넘는 거한이었다. 그는 한 번은 이런 말을 남겼다.

"키 큰 사람을 선호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 중에 가장 뻔뻔하면서도 정작 사람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편견이다."

사람들은 키 몇 센티미터를 더 키우고자 선을 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많게는 15만 달러나 줘야 하지만, 다리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하지 연장술(limb-lengthening surgeries)

을 받으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 부모는 건강하게 잘 크는 멀쩡한 아이를 성장 클리닉에 보내 호르몬 치료를 받게 한다. 아직 이 치료의 부작용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안전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가 이 사실을 잘 아는 건 내가 바로 키 작은 어린이 출신이기 때문이다. 사춘기가 오기 전 무려 3년 반 동안 나는 휴마트로프(Humatrope)라는 주사를 주기적으로 허벅지에 맞았다. 키가 너무 작아서 학교에서 내가 따돌림받을까 걱정하신 부모님의 지극 정성이었다. 하긴 사회가 키 작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부모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태어나기 불과 몇 년 전에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른 노래의 노랫말만 봐도 "키 작은 사람은 세상을 살 이유가 없어"라니, 끔찍하다.

이제 나도 쌍둥이의 엄마가 됐는데,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의 또래 아이 중에 가장 작다. 그러나 나는 한물간 사회의 통념에 따라 아이들에게 성장 호르몬을 주입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아이들에게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도록 가르쳐보려 한다. 앞으로 머지않아 키 작은 것이 칭송받는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4년에 한 번씩 키 작은 이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경탄한다.

시몬 바일스

가 그랬던 것처럼 올림픽 기계체조에 나선 키 작은 선수들이 보여주는 연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키가 작은 사람이 하기 유리한 것, 키가 작아서 좋은 점들이 제법 많은데, 세상은 이 장점을 너무 몰라주는 것 같다. 평균적으로 키 작은 사람이

더 오래 살고,

암에 걸릴 확률

은 낮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키가 작고 몸집이 작아 전체적인 세포의 숫자도 적다 보니, 암세포가 자라날 확률도 낮아진다는

연구

가 있다. 작은 키 때문에 이번 생에 덩크슛을 하기는 글렀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되새기며 위안으로 삼기 좋은 연구다.

키가 작은 사람들은 존재만으로 환경보호를 몸소 실천하는 행동파가 된다.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이나 되는 세상에서 환경 보호의 가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소중하다. 키와 신장을 40년간 연구한 토머스 사마라스라는 학자가 있다. 작은 것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축소의 미학(Shrink Think)'을 주창한, 이 분야의 대부와도 같은 사람이다. 대중이 알아주는 철학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마라스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이 지금의 소비 수준을 유지한 채 키만 전부 10%씩 작아진다면 1년에 8,700만 톤의 식량을 아낄 수 있다. 전 세계 인구도 아니고, 미국인의 키만 줄어도 이렇다. 또한, 식량만 생각해도 이렇다. 물, 에너지, 쓰레기 배출량 등을 종합하면 그 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사마라스는 "키 큰 사람이 그 사실을 부끄러워 했으면 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요즘 세상은 분명 키 작은 게 미덕인 세상"이라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음식을 얼마나 잘 먹는지 늘 자랑한다. 또 신발을 사 오기 무섭게 발이 쑥쑥 커서 몇 번 신어 보지도 못한 새 신이 신발장에 가득하다는 얘기도 마치 훈장처럼 하고 다닌다. 우리 아이들은 밥을 깨작깨작 먹는 편이다. 그래도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아이들 먹성 때문에 가계 지출에서 식재료, 밥값이 부담되는 일은 우리 집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신발도 한 켤레 사주면 1년은 거뜬히 잘 신고 다닌다.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부럽지 않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니라고, 선인장처럼 자라는 아이를 택하겠다고.

키 작은 사람들이 그저 자원을 아껴 지구에 좋은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자원이 점점 희소해지고, 지구 인구는 자꾸 늘어만 가고, 기후변화까지 겹치는 세상에서 키 작은 사람은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 인간이 더는 지구에 살 수 없게 돼 지구에서 탈출해야 할 때 키 작은 사람이 우주선에 더 많이 탈 수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유발 노아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플로레스라는 섬에 살던 초기 인류 이야기가 나온다.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육지와 분리된 섬 플로레스에서 "키가 큰 사람은 몸을 지탱하기 위해 음식이 더 많이 필요했고, 먼저 죽었다."

몇 세대를 거치면서 섬사람들은 진화를 거듭했다. 키는 계속 줄어 107센티미터까지 작아졌다. 키는 작아졌지만, 이들은 도구를 만들고 사냥을 하는 등 키 큰 사람이 할 수 있는 걸 다 할 수 있었다. 생존에 여러모로 유리했던 거다.

키가 작은 사람과 연애하는 사람, 가족을 꾸리거나 자식을 낳을 생각이 있는 사람은 지구를 살리는 데 일조하는 셈이다. 일단 자녀의 키가 작아질 확률이 높아 모든 면에서 폭발하는 인간의 수요를 조금이라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그러니까 데이팅 앱에서 상대방의 최소 신장 요건을 낮춘 당신은 지구를 위해 좋은 일을 한 셈이다.

네덜란드 학자 낸시 블레이커는 사회적 지위에 관해 연구한 적이 있다. 블레이커는 키 작은 사람이 무언가 긍정적인 특징을 더 잘 개발해냄으로써 작은 키를 만회한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키 작은 사람이 더 예민하다는 통념과 배치된다.

"(키 작은 사람은) 공격적이고 예민하게 발끈하기보다는 아주 똑똑하게,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성도 높은 편이죠."

내 남편은 5피트 6인치, 약 168센티미터다. 자기가 키만 컸어도 지금의 유머 감각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아니, 크게 다르다. 남편과의 첫 데이트 때 하도 많이 웃어서 턱이 아플 정도였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인 줄 몰랐다면 혹은 실제로 재미없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우리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늘 뭐든 많아지면 좋은 것 아니냐는 전제가 세상에는 여전히 굳건히 깔려 있다. 샌디에고에 있는 래디(Rady) 어린이병원의 내분비학 전문의 알베르토 하이예크가 이 점에 관해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지금은 은퇴한 하이예크를 만났을 때 도대체 왜 건강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호르몬 치료를 해주는지 물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키 큰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일리 있다고 설명한다.

"세상 모든 게 다 크잖아요. 건물도 크고, 사업도 어떻게든 성장하는 걸 목표로 삼고…."

더 큰 게 좋다는 부모 세대의 생각이 자식을 낳자, 어느 정도 자녀에게 투영된 거라고 하이예크는 설명했다.

또 다른 내분비 전문의 아다 그림버그는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 성장센터의 과학 디렉터다. 그는 키 큰 것을 선호하는 문화가 분명 존재하지만, 일부 부모들이 신장과 성공을 자꾸 연계하는 건 잘못됐다고 우려했다.

"키 작은 사람 중에도 훌륭한 일을 곧잘 하며, 정말 멋진 삶을 사시는 분들 많습니다. 반대로 키 큰 사람 중에도 삶이 비참하리만큼 고생하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삶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은 키 말고도 많습니다."

나도 동의한다. 키 작은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없는 건 마트에서 높은 선반에 있는 물건을 직접 꺼내는 일 정도다. 대신 주변에는 나처럼 키 작은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려는 키 큰 사람들이 늘 있다. 아마 이들은 키 작은 사람들을 돕는 친절을 베풀고 나면 뿌듯해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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