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35년 차 화물차 기사는 왜 파업을 할까

도로 위 안전을 지키기 위한 '책임의 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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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기사 이해종 씨는 35년째 25톤 카고 트럭을 몰고 있습니다. 이 씨의 한 달 수입은 1천만 원 정도. 여기에서 기름값과 차량 구입 할부금을 빼면 한 달 250만 원에서 많게는 300만 원 정도를 손에 쥡니다. 하루 12시간 넘는 장거리 운행과 야간 운행을 견딘 결과입니다. 35년 동안 차는 6번 바꿨습니다. 잦은 고장과 장비 경쟁 때문에 차를 업그레이드 하지 않으면 일감 못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달 차값 할부로만 300만 원 정도가 나갑니다. 넉넉하지는 않은 형편이었지만 이 씨는 화물 운송으로 세 자녀를 길러낼 수 있었습니다.

이 씨가 운전대를 놓은 이유,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상반기 교통 사망사고의 65%가 화물차 사고…'도로 위 흉기' 화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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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에 멈춰 선 화물차 (사진=연합뉴스)

운전을 하다 보면, 특히 고속도로에서 화물차를 만나면 일단 피해야겠다고 느낀 사람은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 올해 상반기 교통 사망사고의 65%가 화물차에 의한 사고였습니다.

'도로 위의 흉기'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화물차를 직접 운전하는 당사자들이 체감하는 위험은 훨씬 큽니다.

화물 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52.1세로 전 산업 평균보다 9.2세 높았습니다.

고령의 경우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과로는 졸음 운전으로 이어집니다. 도로의 위험은 이런 상황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화물 기사들의 파업의 원인이 된 안전운임제는 바로 이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단순히 소득을 높여달라는 주장이 아닙니다.

12시간 넘는 장시간 운행, 일상이 된 과적과 과속 없이도 밥벌이가 가능한 임금을 보장해달라는 요구입니다

. 이들의 '이기적'인 요구는 일반 국민 입장에선 '이타적'인 요구일 수도 있습니다. 도로에서 위험하게 달리는 화물차가 줄어들면 그 혜택은 일반 시민, 바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안전운임제가 실제 도로 안전에 도움이 되는 건지 따져봐야 합니다.

안전운임제, 화물차 기사 근로 개선에 도움…불필요 '다단계 구조'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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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가 화물차 기사들의 노동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건 통계로 증명됩니다. 일단

화물 운송 시장의 여러 불필요한 비용을 해소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화물 기사들은 화주로부터 바로 일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개 운송사로부터 일을 받습니다. 화주가 운송사와 계약을 하고, 운송사가 다시 화물 기사와 계약을 맺는 식입니다. 불필요한 지입제 등 다단계 구조는 실제 화물 기사의 운임을 낮추는 주요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 연구를 보면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다단계 구조는 0.3단계(1.76->1.46단계)로 축소된 걸로 나타났습니다.

"화물 운송 시장의 무리한 저가 입찰 경쟁이 해소되면서 화물 기사의 순수입이 증가하고 월 근무 시간이 줄어드는 등 근로 여건 개선에 효과가 나타났다"는 건 국토교통부가 의뢰한 교통연구원 보고서에도 나오는 얘깁니다. 안전운임제 도입으로 화물 운송 시장의 투명성 36.2% 높아진 걸로 연구됐습니다

. 안전운임제가 단순히 기사 소득 증대 효과만 있는 게 아니라 병폐로 지적돼오던 화물 운송 시장 다단계 구조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입니다.

앞서 지적된 졸음 운전 부분도 살펴볼까요?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설문에 참가한 화물 기사들은 졸음 운전 경험 비율이 25.8%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12시간 이상 운행 비율" 컨테이너 (29.1%->1.4%), 시멘트 (50%->14.7%) 로 확 줄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시간당 운임이 높아졌으니 무리한 운행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는 셈이지요.

'안전운임제'의 교통사고 감축 효과는 어떨까요.

미국 경제학자 마이클 벨저 등이 미국 2대 화물운송업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은 결과는 이렇습니다. "

거리당 운임이 10% 증가할 때마다 월별 사고 확률 34% 감소한다."

국내 연구도 있습니다. "

운송의 질 요인인 운임의 경우 1만 원 상승 시 사고 발생 횟수가 3.19% 줄어들었다.

높은 운임을 지급할수록 사고 위험이 줄어든다는 기존 연구와 상통하는 결과이다. 운임 수준이 높을수록 과도한 노동, 상대적으로 노동 조건이 불량한 운송을 떠맡는 행위가 줄어들어 사 고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도로 운송 공급사슬에 참여하는 이해 당사자 모두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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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 운송의 특징은 그들의 사업장이 도로라는 공공성을 띤다는 데 있습니다

. 만약 이 공공성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그 공적 인프라를 함께 이용하는 일반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국제노동기구는 이렇게 명시합니다.

"도로 이용자들의 예방 가능한 충돌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도로 운송 공급 사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행위자뿐 아니라 정부를 비롯한 이해 당사자들이 공유해야 할 책임이다."

'도로의 안전'은 비단 일부 파업 참가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걸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와 지속 시행에 정부가 반대한다면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도 정부에 있습니다.

구성원 모두의 안전을 위해 화물차 기사들의 노동 조건 개선에 얼만큼의 책임을 나눠질지에 대한 고민은 이제 우리들 몫입니다.

[참고자료]

한국교통안전연구원 ,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 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백두주 한국안전운임연구단장, 한국 안전운임제 시행 효과 분석 및 지속가능한 제도 시행을 위한 정책 과제

이광훈·김태승, '한국 화물 운송 노동자의 노동 환경이 교통사고에 미치는 영향 분석'

Michael H. Belzer, Pay Incentives, Working Time, and Safety:Evidence from U.S. Intrastate Trucking Companies

스크립터 장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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