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명 지지 확보했다"더니…갑자기 하차한 존슨 전 영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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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게이트'로 쫓겨났다가 후임자 리즈 트러스의 실각에 휴가지에서 급거 귀국하며 의욕적으로 총리직 탈환을 노린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갑작스레 하차를 선언한 배경을 놓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습니다.

총 357명인 보수당 의원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102명의 지지를 확보했다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던 존슨 전 총리가 너무 쉽게 경쟁에서 물러나는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존슨 전 총리가 23일(현지 시간) 오전 8시 '줌' 영상 회의를 통해 지지 의원들을 상대로 자신이 유일한 차기 총리 후보라고 강조할 때만 해도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불과 12시간여 만에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에 후보 자리를 내줬다고 보도했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소속 정치전문기자 피터 워커는 분석 기사에서 "그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경쟁에서 물러난다. 이번 일요일 밤 (하차 선언도) 그랬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많은 관전자와 보수당 의원 다수는 의회 동료 102명의 지지를 확보했다는 존슨의 주장을 여전히 매우 미심쩍게 여기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존슨 전 총리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의원은 6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수낵 전 장관은 현재까지 150명 가까운 의원의 지지를 확보했습니다.

영국 언론들은 존슨 전 총리가 자신에 대한 당내 지지를 사실보다 부풀렸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 파벌로 갈려 내홍 중인 보수당을 하나로 묶어 난제를 헤쳐나갈 사람은 자신뿐이라면서 수낵 전 장관 등 유력 후보에게 양보를 요구하기에 앞서 세를 과장한 일종의 '블러핑'이었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존슨 전 총리 측이 후보 등록에 필요한 의원 100명 이상의 지지 서명을 이미 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잇따라 단일화 협상에 나서며 다른 후보 지지 세력을 흡수하려 한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정황입니다.

존슨이 총리 자리 탈환을 포기한 것은 리시 수낵 전 장관과 단독 회동 이후 자신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는 22일 저녁 수낵과 가진 일대일 회동에서 경선 불출마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회동을 제안한 것은 존슨 전 총리였습니다.

수낵 전 장관은 올해 7월 존슨 전 총리가 파티 게이트로 궁지에 몰렸을 때 사표를 던져 총리 퇴진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존슨 지지세력은 이어진 차기 당 대표 경선에서 수낵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워 총리 도전을 저지시킨 바 있습니다.

더타임스는 이후 3개월 넘게 대화를 나누지 않던 두 사람의 회동이 놀랄 만큼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으나 존슨이 원하는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존슨은 이번 회동에서 "내가 바로 유일한 선택지이고, 당을 결속하기 위해 당신은 내 뒷줄에 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수낵에게 전혀 통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더타임스는 카리브해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이코노미석을 타고 급거 귀국한 존슨 전 총리가 시차로 인한 피로감이 역력한 와중에도 세력 결집을 모색하며 백방으로 뛰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낵이 보유한 더 큰 지지세력을 손에 넣으려는 그(존슨)의 '도박'은 실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존슨 전 총리 측은 상대적으로 약체 후보로 거론되는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와도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가디언은 존슨 전 총리가 정치인 중에서도 체면을 중시하는 편이란 점을 언급하면서 의원 100명의 지지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굴욕적인 상황에 부닥칠 개연성이 커지자 그 전에 하차를 결심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존슨 전 총리가 제러미 헌트 현 재무장관에게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하면 유임시키겠다는 뜻을 밝히며 러브콜을 던졌지만 정작 그 시각 헌트 장관은 수낵에 대한 공개 지지 선언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때 열렬한 존슨 지지자였던 수엘라 브레이버먼 전 내무장관이 예상을 뒤엎고 수낵 전 장관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상당한 타격이 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디언은 양자 대결이 성사됐다면 수낵 전 장관에 대한 당내 호감도가 낮은 편이란 점 때문에 존슨 전 총리가 승리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았을 터이지만, 재집권해도 당을 제대로 이끌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매체는 "소속 의원의 3분의 2가 (존슨이) 총리직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일부는 그가 다시 총리에 오르면 탈당하거나 사임하겠다고 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선 설사 경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존슨 전 총리는 오히려 파티 게이트 때 의회에 거짓 증언을 했는지 조사를 받을 처지라고 영국 언론들은 지적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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