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부 장관이 북한 안광일 주아세안대표부대사 겸 주인도네시아대사를 만나 조건 없는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제안했고 안 대사는 이에 대해 '여건 조성이 먼저'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어제(5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취재진에게 박 장관과 안 대사의 대화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박 장관은 그제 저녁 프놈펜 CICC 행사장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안 대사와 마주쳐 인사를 나눴습니다.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당시 박 장관은 안 대사에게 "조건 없는 남북 대화가 필요하다"면서 한반도 평화 안정을 위해서 비핵화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안 대사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는 취지로 짧게 답했다고 고위당국자는 전했습니다.
박 장관은 그제 프놈펜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로 대(對)한국 수출 규제 철회를 비교적 분명하게 요구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보복성 조치였던만큼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고위 당국자는 "한국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본이 수출 통제 철회를 통해 나름대로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모두 참여한 5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선 타이완해협을 놓고 주요국 간 적잖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나 일본이나 또 우리의 입장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바람직하지 않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것이 미국의 일방적인 행위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미국이 져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중국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지지 않았나. 중일 설전도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박 장관은 ARF 전에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타이완해협 문제 등을 거론했습니다.
박 장관이 언급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이라는 표현은 통상 미국과 일본이 타이완 문제에 대한 중국의 행태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난하기 위해 자주 쓰는 표현으로, 한국이 사용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한국이 타이완해협 사태에 대해 미국과 일본의 입장에 보조를 맞춘 것인데, 9일 열리는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관련해 어떤 논의가 있을지 주목됩니다.
(사진=외교부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