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이 전하는 월드리포트

[월드리포트] 아베 피격 소식에 '좋아요' 누르는 중국인들


아베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사망 소식은 중국에서도 단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신화통신과 CCTV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피격 직후부터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으며,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선 관련 해시태그가 연일 검색 순위 상위에 랭크되고 있습니다. 사건 초기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아베는 이미 생명 징후가 없다#는 해시태그는 10일 오전 현재 조회 수가 17억 회를 넘어섰습니다. 중국의 인구가 14억 명임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개중 일부는 2번 이상 이 소식을 접한 셈입니다. 관련 기사 중 하나에는 '좋아요'가 210만 번 이상 눌렸습니다. '좋아요'가 수십만 번 눌린 다른 기사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접하는 중국인들 반응에는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이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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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웨이보에 올라온 아베 전 일본 총리 피격 관련 CCTV 보도. '좋아요'가 216만 회 눌려있다.
중국 네티즌들, 국치일 '7·7 사변'과 아베 피격 연결 지어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하기 하루 전인 7월 7일은 85년 전인 1937년 중국에서 '7·7 사변', 이른바 노구교 사건이 발생한 날입니다. 7·7 사변은 중국과 일본 군대가 베이징 노구교에서 충돌한 사건으로, 중일전쟁의 발단이 됐습니다. 당시 몇 발의 총소리가 울렸다는 이유로 베이징 교외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주력 부대를 출동시켜 노구교를 점령했고, 이후 베이징과 톈진에 총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그해 12월에는 난징에서 대학살이 자행됐습니다. 중국인들은 7월 7일을 국치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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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수치를 잊지 말자'고 보도한 7일 자 중국 매체 펑파이의 보도

때문에 7월 7일이 되면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은 고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에는 일본 전자회사 소니가 중국에서 7월 7일을 신제품 출시일로 잡았다가 중국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고 우리 돈 2억 원에 가까운 벌금까지 물어야 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7일 '오늘의 중국은 1937년의 중국이 아니다'라는 게시물을 웨이보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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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일보는 7일 '오늘의 중국은 1937년의 중국이 아니다'라는 게시물을 웨이보에 올렸다.

아베 전 총리 피격 소식에 달린 댓글 중에는 이 7·7 사변과 연결 지은 것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7월 7일 발생했더라면', '미국 시각으로는 아직 7월 7일이다', '역사를 잊지 말자', '역사는 돌고 돈다'는 식입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의 한 평론가가 노구교 사건을 언급하며 "어제(7일) 발생하지 않은 게 유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관영매체 "아베, 논란의 인물"…울먹인 중국 기자는 뭇매

중국 관영매체도 아베 전 총리의 사망에 대해 애도하기만 하진 않았습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아베 전 총리 사망 직후 '아베는 중국에서 중일 관계에 대한 자신의 공헌을 망친, 논란의 인물로 여겨진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 매체는 기사에서 "아베 전 총리의 피격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가장 큰 정치적 사건으로, 아베 전 총리는 한때 중일 관계에 기여했지만 나중에 그 업적을 찢어버렸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일제 침략 역사 부정 등 아베 전 총리의 반중국 행보를 열거했습니다. 지난해 12월 "타이완의 비상사태는 일본의 비상사태"라고 한 아베 전 총리의 발언을 언급하면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도발했다고 전했습니다. 불의의 사건으로 명을 달리한 외국 최고위급 인사에 대한 기사로는 보기 드문, 냉정하기 그지없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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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8일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사진과 함께 '아베는 중국에서 논란의 인물로 여겨진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중국 기자가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감정적으로 보도했다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중국 매체 펑파이의 일본 특파원은 아베 전 총리 피격 직후 현지에서 소식을 전하면서 아베 전 총리의 긍정적인 대중국 업적을 소개했습니다. 와중에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본 중국 네티즌들은 '기자가 일본인이냐', '당신의 눈물을 보고 14억 중국인은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역사 공부를 더 하라'고 맹공을 가했습니다. 해당 특파원은 결국 소셜미디어를 통해 "프로답지 못했다"고 사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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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파이의 일본 특파원은 아베 전 총리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울먹였다가 비난을 받고 사과했다.
시진핑, 아베 사망 다음 날 높은 수준의 조의 표해

반면 중국 지도부는 높은 수준의 조의를 표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9일 기시다 일본 총리에게 개인 명의로 조전을 보냈습니다. "아베 전 총리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아베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중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유익한 공헌을 했다"고 썼습니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시 주석은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아베 전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에게도 조전을 보냈고, 중국 권력 서열 2인자인 리커창 총리도 기시다 총리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시 주석의 조전은 다른 나라 정상들의 조전보다는 상대적으로 늦었습니다.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지 하루 뒤에 보낸 것입니다. 이미 아베 전 총리에 대한 관영매체의 부정적인 평가가 보도된 이후였고, 네티즌들의 위와 같은 반응이 나온 뒤였습니다. 계산된 것일 수 있습니다. 미중 갈등 속 친미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일본에 불편한 심기를 먼저 보여준 다음, 일본과의 관계 관리에 나선 것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관영매체나 네티즌들의 반응이 과하다 싶어 조의 수준을 조정해 수습에 나섰을 수도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일본은 더 보수화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일본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고인의 불행한 죽음마저 정치적으로 소비할 경우 국제적인 역풍을 맞을 수 있습니다. 앞서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아베 전 총리 피격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네티즌들의 반응에 대해선 평론하지 않겠다"며 "이번 사건이 중일 관계와 연관돼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시진핑 주석이 오랫동안 일궈온 자국의 민족주의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외교적 예의를 유지해 미묘한 균형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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