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용감한 소녀들, 서른의 편견을 부수다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여러분은 혹시 '서른'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하면 1960년대 이후 생은 십중팔구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떠올린다고들 하지요. 30여년이 지났음에도, '서른은 청춘에서 또 하루 멀어지는 나이' 노랫말이 공감을 얻는다는 것, 그 나이쯤이면 무언가 결정해야한다는 사회적 시선이 아직도 굳건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압박들은 상담현장에서도 자주 발견되고 있는데요. 진로와 취업을 고민하는 청년 중 33.1%(출처 : 청년마음통계)가 나이로 인한 사회적 압박이 가장 힘들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지요. "내년이면 30살인데, 이루어 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라든가 "35살에 진짜 원하는 것을 알게 된 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 같아요. 지금 회사를 그만둘 순 없잖아요."

하지만 최근, 이러한 '서른'의 강박을 멋지게 깨버린 네 명의 청년들이 나타났습니다. 아이돌 그룹 '브레이브 걸스'인데요. 한명을 제외하곤 모두 서른이 넘은 걸그룹입니다. 2016년 데뷔했지만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해 숙소에서 짐을 빼고, 해체를 준비하던 팀이었지요. 실제로 한 멤버는 "서른이 되었음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다고 느껴질 때 가장 답답했던 건 내 선택이 맞았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며 어머니 앞에서 오열했다고 말했지요. 지금이라도 회사원이 되려고 한국사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기도 했고요. 무대 밖에서는 그들 역시 나이의 압박과 불안을 겪던 '서른 즈음'의 청년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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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에게 지난 2월, 마법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4년 전에 발매했던 곡이 유튜브의 추천영상으로 떠오르며 소위 '역주행'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순간 반짝 할 줄 알았던 이 역주행은 음원차트 1위까지 거머쥐며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갑자기 재조명된 것은 유튜브의 힘이지만 거기에 한 번 더 불을 붙여준 건 분명 그녀들의 힘입니다. 왜냐고요? 유튜브에서 처음 반응이 왔던 것은 뮤직비디오나 콘서트가 아닌, 군 위문공연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군인들의 우렁찬 떼창이 인상적이어서 사람들이 몰리고, 그 소소한 반응이 모여 유튜브 추천이 장기화 되었지만, 점차 대중에게 '재미있는 영상'을 넘어 이 노래의 진가와 그녀들의 노력이 알려지게 된 거지요. 이런 좋은 노래를 가지고도 뜨지 못했다는 것. 그럼에도 무명기간 내내, 군 위문공연 최다 걸그룹으로 활동하며 '군통령'으로 불리웠다는 것. 걸그룹이 가장 꺼린다는 군부대 공연에서 조차 몸을 사리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을요.

서른, 누군가에게는 진로를 확정해야한다는 압박을 주는 나이. 걸그룹이라면 은퇴 후를 생각해야한다고 여기던 나이. 하지만 그들은 세간의 편견을 깨버리고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유튜브가 불러일으켜준 순풍에 돛을 단 것은, 도무지 결실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에 흘렸던 땀방울의 힘 아닐까요. 부디 그들의 항해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응원하며 작은 바람을 담아봅니다. 이제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또 하루 멀어져가는'시기가 아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용감한 네 소녀들이 항해를 시작한 나이로, 그들처럼 누구나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나이로 인식되기를, 부디 그들의 행보가 희망의 증거가 되어주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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