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기사 날조" 주장에 결국 손 들어준 日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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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폭로한 일본 언론 기사가 날조였다는 주장에 일본 법원이 또다시 손을 들어줬습니다.

일본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 제1소법정은 군 위안부 문제 첫 보도를 했던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 신문 기자가 자신의 기사를 '날조'라고 비방한 주간지 발행사와 대학 교수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측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이로써 우에무라 씨의 청구를 배척했던 1,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우에무라 씨는 아사히신문 기자 시절인 지난 1991년 8월 11일 지면을 통해 당시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와 관련된 기사를 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폭로했습니다.

우에무라 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전 조선인 종군위안부 전후 반세기 만에 무거운 입을 열다'라는 제목으로 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나온 김 할머니의 증언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는 위안부 문제를 세상 밖으로 드러낸 계기가 되었고, 일본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담은 1993년 8월 4일 '고노 담화'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레이타쿠 대학의 니시오카 쓰토무 객원교수는 일제의 '여자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한 것 등을 문제 삼아 우에무라 씨의 기사가 날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고, 주간지 '슈칸분슌'은 2014년 이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에무라 씨는 논문과 관련 보도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1심을 맡았던 도쿄지방재판소는 2019년 6월 니시오카 씨의 논문 기술 내용은 중요 부분에서 진실성이 증명되며 공익 목적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우에무라 씨가 취재 과정에서 김 할머니가 꾐에 넘어가 위안부가 됐다고 들었지만 '일본군에 의해 전장에 연행돼 위안부가 됐다'는 취지로 보도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지난해 3월의 2심 판결에서 인용됐고, 원고인 우에무라 씨의 불복으로 진행된 상고심에서도 결국 최고재판소는 피고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우에무라 씨는 이번 상고심 판결이 후 일본 법조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취재를 토대로 쓴 기사"라며 "지극히 부당한 결정"이라고 반발한 반면, 니시오카 씨와 주간지 발행사 분게이슌주 위안부 문제를 처음 폭로한 일본 언론 기사가 날조였다는 주장에 일본 법원이 또다시 손을 들어줬습니다.

일본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 제1소법정은 군 위안부 문제 첫 보도를 했던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 신문 기자가 자신의 기사를 '날조'라고 비방한 주간지 발행사와 대학 교수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측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이로써 우에무라 씨의 청구를 배척했던 1,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우에무라 씨는 아사히신문 기자 시절인 지난 1991년 8월 11일 지면을 통해 당시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와 관련된 기사를 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폭로했습니다.

우에무라 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전 조선인 종군위안부 전후 반세기 만에 무거운 입을 열다'라는 제목으로 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나온 김 할머니의 증언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는 위안부 문제를 세상 밖으로 드러낸 계기가 되었고, 일본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담은 1993년 8월 4일 '고노 담화'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레이타쿠 대학의 니시오카 쓰토무 객원교수는 일제의 '여자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한 것 등을 문제 삼아 우에무라 씨의 기사가 날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고, 주간지 '슈칸분슌'은 2014년 이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에무라 씨는 논문과 관련 보도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1심을 맡았던 도쿄지방재판소는 2019년 6월 니시오카 씨의 논문 기술 내용은 중요 부분에서 진실성이 증명되며 공익 목적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우에무라 씨가 취재 과정에서 김 할머니가 꾐에 넘어가 위안부가 됐다고 들었지만 '일본군에 의해 전장에 연행돼 위안부가 됐다'는 취지로 보도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지난해 3월의 2심 판결에서 인용됐고, 원고인 우에무라 씨의 불복으로 진행된 상고심에서도 결국 최고재판소는 피고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우에무라 씨는 이번 상고심 판결이 후 일본 법조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취재를 토대로 쓴 기사"라며 "지극히 부당한 결정"이라고 반발한 반면, 니시오카 씨와 주간지 발행사 분게이슌주측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환영했습니다.

앞서 우에무라 씨는 우익 성향 언론인인 사쿠라이 요시코 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도 지난해 11월 최종 패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번 법원 판결 직후 일본에서 SNS 활동을 하는 작가 가도타 류쇼 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위안부 강제 연행설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등 일부에서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강제 연행 성격의 위안부 실체를 일정하지 않은 것처럼 호도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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