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어떻게 이렇게 조사하나" 뺑소니 무죄 선고 법관의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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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뺑소니 혐의로 입건된 시민을 추궁하듯 조사한 경찰 행태를 법관이 "착잡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했습니다.

2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50대 남성 A 씨는 지난해 차를 몰고 대전 한 도로를 지나던 중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정지선을 조금 지나쳐 멈춰 섰습니다.

그때쯤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이 A 씨 차와 몇m 떨어진 곳에서 넘어지면서 전치 8주 상처를 입었습니다.

곧바로 차에서 내린 A 씨는 주변 시민과 함께 자전거를 세워주는 등 현장을 살피다 다시 제 갈 길을 갔습니다.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 등을 살핀 경찰은 'A 씨 차량을 피하려다 피해자가 쓰러졌으나, A 씨는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했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검찰은 경찰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A 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도주치상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1심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3단독 구창모 부장판사는 '목격자들 진술이 엇갈리는 등 A 씨가 자신의 차 때문에 행인이 넘어졌다는 인식을 하고도 그대로 현장을 떠났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구 판사는 더 나아가 기소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신랄하게 꼬집었습니다.

경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피의자가 뺑소니하지 않았다고 객관적으로 입증할 증거나 증인이 있느냐'고 묻는 경찰관에게 A 씨가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답하는데, 이는 무죄추정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혐의 입증 책임이 경찰에 있는데도, 뺑소니를 예단한 채 되레 A 씨에게 무혐의 근거를 대라는 식으로 조사했다는 것입니다.

구 판사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어찌 이런 조사를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착잡할 따름"이라며 "피고인은 검사한테 경찰관들의 억압적 태도가 조금 있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역시 사고 개요에 대해 길게 질문한 뒤 '네, 아니오' 식 답변을 받아내는 장문단답(長問短答)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구 판사는 "당시 119 신고 내용에 교통사고라는 언급은 일절 등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고인에게 함부로 뺑소니 운전자라는 낙인을 찍을 순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검찰은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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