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 총알 속 버틴 나날들…여자 의용군들의 기억


동영상 표시하기

<앵커>

6·25전쟁 70주년 관련 보도 이어갑니다. 3년간의 한국전쟁에는 2천500명에 이르는 '여군'도 참전했습니다. 첩보 수집과 북한군 귀순 설득, 모병 활동을 한 전쟁의 숨은 영웅들인데, 절반 가까이는 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윤하 기자가 이들을 만났습니다.

<기자>

1950년 9월, 춘천여고 1학년이던 정기숙 할머니는 친구 셋과 함께 여자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했습니다.

최전방 부대에서 선전업무를 맡은 정 할머니는 험난한 북진 과정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정기숙/6·25 전쟁 여자 학도의용군 : 인민군 패잔병들한테 습격도 받고. 또 인민군들이 길에다가 지뢰를 묻어서 차가 망가져서 차도 한번 바꾸고….]

압록강까지 도착한 뒤 통일을 눈앞에 뒀다는 기쁨도 잠시, 이틀 뒤 중공군에 포위됐습니다. 

[정기숙/6·25 전쟁 여자 학도의용군 : 따발총이 날아오는데, 비 쏟아지는 것 같았어요. 앞에 사람 쓰러지지, 뒤에 사람 쓰러지지….]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 1차 공세 때 포로로 잡혔다가 겨우 돌아왔지만 함께 입대한 친구 둘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열일곱 살 때 여자 의용군에 입대한 이복순 할머니.

9사단에서 행정업무를 맡았는데,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면서도 군 서류를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이복순/6·25 전쟁 여자의용군 2기 : 카빈 총 아시죠, 그걸 주시면서 거기에 27발인가 들어가나요. 그것도 모자라 30발을 또 저한테 주셔요.]

육·해·공군·해병대는 물론 군번 없이 학도의용군이나 민간간호대, 유격대로 참전한 여성들도 많았습니다.

현재까지 파악된 6·25 전쟁 참전 여군은 2천500명.

이 가운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절반이 조금 넘는 1천427명뿐입니다.

지원부대 소속이 많아 전공기록이 적다 보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고, 참전 사실을 적극 알리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오프라인 - SBS 뉴스

대부분 아흔 안팎인 6·25 전쟁 참전 여군들, 생존자가 더 줄기 전에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영상취재 : 서진호, 영상편집 : 황지영, 화면제공 : 국방부 국가기록원)  

▶ 지게 위 올려 태운 노모…한국군이 담은 전쟁의 아픔

▶ 젊을수록 '통일<평화 공존'…59% "김정은 불신한다"

댓글
댓글 표시하기
6·25전쟁 70주년
기사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