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마부작침] 또 다른 '조주빈들' 무슨 선고 받았나

n번방 유사사건 판결 살펴봤더니...


대표 이미지 영역 - SBS 뉴스

262만 명, 그리고 585만 명.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착취 사건, 이른바 'n번방' 가담자 수사와 신상공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참여자의 숫자다. 최다 청원에만 262만 명이, 5개 청원을 합해 585만 명이 참여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충격적인 사건 내용과 함께 그야말로 공분이 모아진 결과였다. 정부는 3월 24일 철저한 수사와 대응 및 후속 조치 등을 약속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n번방 사건'과 유사한 사건에 주목했다. 수법은 새로운 듯하나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는 이미 숱하게 벌어졌고 진행 중이다. 현행 법에 의한 단죄도 이뤄져 왔다. 최근 우리 법원이 또 다른 '조주빈들'에게 무슨 판결을 했는지 보면 n번방 사건 처벌 수위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 또 다른 '조주빈들', 법정 최소형 미만 선고받았다

13살에게 구강 성교와 자위 등 영상 2개를 촬영하게 하고, 15살에게 자위 장면 등 영상 88개를 제작하게 하고, 16살에게 자위 모습 등 영상 76개를 만들게 하고, 15살과 구강 성교, 성기 삽입 모습 등 영상 4개를 찍은 남성.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17,962개를 구입하거나 다운로드하여 소지하고 있던 자.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이런 범행을 저질러왔던 그에게 법원은 어떤 형량을 부과했을까.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은 2019년 9월 5일, 이 피고인에게 징역 3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과 장애인 시설 5년 취업 제한을 선고했다.(위에 언급한 죄 외에도 청소년 성 매수와 불법촬영 죄까지 포함된 선고였다.) 적절한 심판이었을까.

아청법 11조 1항은 성착취물 제작·수입·수출에 대한 내용이다. 이 조항을 위반하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최소한 징역 5년, 최대 무기징역까지도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지난 1년 여 간 성착취물 제작 사건에 선고된 형량을 살펴보니 징역형 실형이 59.7%(37명), 평균 형량은 43.5개월이었다. 3년 8개월 정도다. 집행유예는 38.7%(24명), 평균 징역 30.5개월·집행유예 43개월이었다. 선고유예도 1건 있었다. 법정 최소형은 징역 5년이지만 실형 평균부터가 최소형보다 낮았고 집행유예 비율은 40% 가까이 됐다. 이들은 제작 외에 다른 죄도 함께 저질렀는데도 이 정도 형량에 그쳤다. 성착취물를 제작하면 징역 5년형은 받아야 한다고 꽤 엄중하게 법을 만들었으나 판결은 그렇게 내리지 않고 있다는 거다.

오로지 '제작' 죄만으로 선고받은 판결을 따로 보니 실형 39.3%(11명), 평균 형량은 39.8개월이었다. 3년 4개월 정도다. 집행유예는 60.7%(17명), 평균 징역 30.7개월·집행유예 43.8개월이었다. 더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그럼 최소형 이상을 선고한 판결은 얼마나 됐을까. 단 9명, 14.5%에 불과했다. 대부분 청소년 성폭행, 강제추행 등 물리력을 동반한 죄를 함께 저지른 경우였다.

처음 언급했던 사건 피고인은 그래도 실형으로 징역 3년이 나왔으니 상대적으로 무거운 처벌에 속했다. 이 사건의 판사는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고, 치료받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며, 벌금형을 초과한 범죄 전력이 없고, 피고인 가족과 지인도 선처를 탄원한다"

면서 형을 깎아줬다. 저 범죄 전력은 동종의 범죄, 즉, 성착취물 관련 범행 2회였다.

n번방 사건 주동자, 운영자급에게 우선 성착취물 제작·배포 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법원이 과거의 '조주빈들'에게 내린 판결이 이런 정도였는데, 현재의 그들에겐 다른 형량이 나올까.

● 과거의 'n번방 단순 관람자' 92%에 벌금 300만 원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2018년 8월부터 석 달에 걸쳐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성착취물 영상 57개, 사진 1337개를 다운로드하여 소지한 피고인. 그에게 법원은 징역 4개월·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12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수강을 선고했다. 판사는

광고 영역

"죄질이 좋지 않지만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

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지난 1년 여 간 성착취물 소지 죄에 대한 실형 선고는 단 1건도 없었다. 집행유예가 7.7%(2건)였고 벌금형이 92.3%(24건)를 차지했다. 평균 벌금은 2,976,190원, 약 300만 원이었다. 아청법 11조 5항, 성착취물 소지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작 죄처럼 최소형에 못 미치는 선고까지는 아니나 징역 1년, 벌금 2천만 원까지 선고할 수 있는데 우리 법원은 주로 벌금형을, 300만 원어치 정도 선고해 왔다.

n번방 회원들, 단순 관람자에겐 성착취물 소지 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텔레그램 특성상 영상을 보려면 다운로드해 소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 법원의 판결 추세대로면 이들에게도 벌금형이 유력하다.

● 무슨 이유로 감형해줬나

분석 대상 판결문에 담긴 형의 가중·감경 이유를 살펴봤다. 통상 판결문 후반부엔 피고인이 이런저런 이유로 불리하고(가중) 이렇게 저렇게 유리하여(감경) 최종 형을 결정했다는 양형 이유가 담겨 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감경 이유 중 가장 많은 건 범행 인정·반성이었다.(79.5%) 다음은 초범 혹은 비슷한 범행 전력이 없다는 것(57.6%), 다음은 피해자와 합의(17.4%), 유출하지 않거나(10.6%),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9.1%) 등이었다. 가중 이유는 죄질이 불량하거나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고(60.6%), 피해자의 충격과 고통이 크고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며(27.3%), 여러 차례 범행했거나(15.9%),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한(15.9%) 순으로 많았다.(이상 중복 포함)

아청법이 성인 대상 범죄에 비해 더 무거운 처벌을 내리도록 하고 있는 건 그만큼 범죄의 해악이 크고 성장기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미성년자를 함께 보호하고 온전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판결문에 담긴 양형 이유를 보면 과연 그런 점들이 얼마나 고려됐는지 알기 어렵다.

● 성착취물 사건, 열 중 일곱은 재판도 안 받는다

[마부작침]이 분석한 사건 판결문 자체가 제한적이다. 범죄분석 DB에 따르면, 아청법 위반 사건은 매년 늘고 있어서 2018년엔 993건으로 집계됐다. 다른 범죄에 비해 성착취물 범죄는 기소되지 않는 비율이 높다. 기소란 검찰이 범죄자를 재판에 넘기는 걸 뜻한다. 전체 범죄 기소율이 2018년 기준 30%를 상회하는데 성착취물 제작·배포는 10% 후반, 성착취물 소지는 20% 안팎만 기소된다. 반면 기소유예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검찰이 피의자의 피의 사실은 인정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게 기소유예다. 죄는 있지만 이번엔 기소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성착취물 제작·배포는 60%, 성착취물 소지는 70% 이상이 기소 유예된다.

한 마디로 성착취물 관련 범죄 상당수는 재판도 받지도 않는다. 여기에 사법당국에 적발되지 않은 범죄까지 감안하면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 양형기준, 필요하지만...

[마부작침]은 지난해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범죄는 계속 등장하나 이에 걸맞은 양형 기준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7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올해 상반기 내에 만들기로 했다. n번방 사건이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서 양형위원회는 성착취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성범죄, 특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구체적인 양형 기준은 빨리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양형 기준은 어디까지나 판사들이 재판에 참고하는 지침일 따름이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이사인 김영미 변호사는

광고 영역

"판사나 수사기관에서 성폭행이나 강제추행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는 직접 신체적인 가해를 하는 게 아니라며 심각성을 잘 인식 못하는 것 같다"

면서

"영상이 제작되고 유포되면서 받는 피해자의 피해는 성폭행 못지않게 평생 지속될 수 있는데 그런 공감대가 부족하다"

라고 지적했다.

여성학 연구자인 권김현영은 3월 24일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들이 고통받기를 원한다. 처벌은 처벌대로 받되, 씻기지 않는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매일 밤을 보내기를 원한다... 그들이 자신이 한 짓이 무엇인지를 뒤늦게라도 깨닫고 다시 인간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당신들이 평생 동안 고통받기를 바란다"

라고 적었다. 양형기준 마련, 처벌 강화와 함께, 피해자가 보호, 가해자는 고통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취재: 심영구 데이터 분석: 안혜민 디자인: 안준석 인턴: 이승우, 이유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댓글
댓글 표시하기
마부작침
기사 표시하기
디지털 성범죄 파문
기사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