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5G폰 사지 마세요. 인터넷은 무료입니다.

박경신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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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5G폰을 살지 말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 5G는 기존보다 주파수가 수십 배 높은 전자기파를 이용하면서 초당 포장해 넣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지금보다 최대 100배까지 높아지는 무선통신 방식을 말한다. 초당 전파에 담긴 정보가 많아진다는 것은 정보전달 속도가 빨라짐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인터넷을 하게 되면 당연히 속도가 빨라진다.

그런데 내 생각에 지금 5G폰을 사는 것은 돈 낭비이다.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의 구조에 대해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원래 인터넷은 미국 국방성이 통신사들의 중앙교환기가 공격을 당해도 주변의 단말들이 서로 통신할 수 있도록 하려는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이러려면 모든 단말들이 다른 단말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그러려면 연결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10개를 서로 직접 연결하려 해도 10*9/2=45개가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1억 개를 직접 연결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겠는가?

결국 인터넷에 담긴 발명은 각 단말이 모든 단말들과 '직접 연결하지 않으면서도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모든 단말들이 다른 모든 단말들이 수신 및 발신하는 정보를 '착신지를 향해 옆으로 전달'하는 약속을 하였고, 이것이 인터넷의 규칙이다. 인터넷에서는 각 단말이 이웃 단말에게 옆으로 전달할 뿐 최초출발부터 최종도착까지 정보전달을 책임지는 자가 없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캘리포니아의 지메일 서버나 페이스북 서버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30개가 넘는 라우터(인터넷에서 정보에 담긴 수신처의 주소를 읽고 가장 적절한 경로를 이용해 다른 통신망으로 전송하는 장치)들을 거쳐 가야 하는데, 이 라우터들이 몇 개의 망 사업자 소속인지도 알 수 없다. 5G폰을 사봐야 국내통신사 기지국까지만 속도가 빨라질 뿐이지, 거기서부터 국내외의 콘텐츠 즉 최종도착 또는 최초출발지와의 정보전달 전체는 더 빨라지지 않는다. 마치 고속도로 운전을 할 때 한 구간이 소통이 아무리 원활해도 중간 구간이 하나라도 원활하지 않으면 전체속도가 빨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그럼 망 사업자들이 광고하는 대로 인터넷 접속 속도가 전체적으로 수십 배 늘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용자가 접속하려는 콘텐츠와 망 사업자 사이의 접속용량도 수십 배가 같이 늘어나야 하고 망 사업자 내부의 단말들과 기지국들이 서로 연결되는 접속용량도 수십 배가 같이 늘어나야 한다.

망 사업자들은 수십 배의 속도 개선을 5G 구매자들에게 약속했으니 그런 준비를 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망 사업자들은 자발적으로 콘텐츠 제공자들과의 접속용량을 높이면 손해이니 콘텐츠 제공자들이 돈을 더 내고 더 높은 접속용량을 구매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지금은 콘텐츠업자도 그럴 동기가 없다. 왜? 그렇게 수십 배의 속도를 필요로 하는 앱들이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나 가상현실, 증강현실, 원격수술 등의 앱이 아직 수십 배의 속도를 필요로 할 만큼 복잡해지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발자들이 앱을 만들 때 현재의 4G/LTE망에서도 운영 가능하도록 스마트하게 만들지 무지막지하게 대역폭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5G망이 깔려있지 않은 캘리포니아에서 이미 테슬라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에서 숙면을 취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결국 5G망이 제 값을 할 때는 5G망의 넓은 대역폭을 필요로 하는 킬러 앱이 나온 이후이다. 전 국민들이 3G폰을 경쟁적으로 사기 시작한 것은 카카오톡이라는 남녀노소 다 같이 쓰는 킬러 앱이 나온 후였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망 사업자들이 먼저 5G망을 제대로 깔고 킬러 앱이 나오면 그 다음에 돈을 받으면 어떨까? 해외의 망 사업자들은 그럴 의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망 사업자들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몇 년 전까지는 국내 인터넷 업체들이 '무임승차'를 한다고 비난하더니 이제는 해외 인터넷 업체들에게 '망 이용료'를 받겠다고 난리이다. 그걸 받아야 5G망을 제대로 깔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전화와 달리 '통신비는 무료'임을 예정하고 시작된 통신 체계이다. 그러니 '망 이용료를 받겠다'거나 '무임승차'라거나, 이건 전부 다 해외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고 인터넷이라는 국제기준에 어긋나는 말이다. 따라서 나의 결론은 이렇다. 이런 인프라가 바뀌지 않는 한 당분간 5G폰은 사지 마시길.

#인-잇 #인잇 #박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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