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나는 왜 '편식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나?

김도희 | 한국인으로 태어나 세계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관광학도 여행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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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안 먹는 음식이나 알레르기 있는 식재료 있어?"

3년 전, 스웨덴에서 유학을 시작한 첫날. 친구와 함께 요리를 하기 위해 장을 보러 갔다, 나는 처음으로 안 먹는 음식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못 먹는 것'과 '안 먹는 것'은 다른 문제다.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며 평생 살아왔기에, 나는 '아무거나 다 잘 먹어'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유별나게 못 먹는 음식이 있다고 말하는 일은 까탈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프랑스인 친구 클로이는 자신을 '비건'이라 소개하며, 식생활에서 동물성 제품을 일절 소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나는 처음 '비건'이라는 말을 들었고, 아무거나 소비하는 습관이 미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비건은 계란, 유제품뿐만 아니라 동물성 제품을 일절 소비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다. 클로이는 동물 보호뿐만 아니라 환경을 위해 비건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었다. "가축 사육이나 도살 환경이 비윤리적이기도 하지만, 환경적으로도 육식은 이산화탄소나 수질 오염의 주범이야." 클로이는 소비를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클로이 외에도 나는 2년 동안 스웨덴에서 수많은 채식주의자들을 만났다. 정도는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 동물 권리, 환경 보호, 건강 등의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실천하고 있었다. 슈퍼마켓, 식당, 카페 등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제품이나 메뉴를 반드시 마련해놓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일상에 타인의 식습관에 대한 배려가 배어있는 점이었다. "채식주의자 있나요? 생선은 먹을 수 있나요? 달걀이나 유제품은요? 알레르기 있는 음식은 없고요?" 음식점에 가든,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가든, 사람들은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안 먹거나 못 먹는 음식은 없는지 물어봐주었다. 그리고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그 사람의 식습관을 존중해 따로 음식을 마련해주었다.

다양한 식습관을 존중하는 문화 덕분에 개인의 식습관을 드러내는 데 눈치를 볼 필요도, 거리낌도 없었다. 나도 친구들과 함께 식사할 때는 채식주의자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만약을 대비해 채식 요리는 꼭 준비하곤 했다.

스웨덴에서 보낸 2년은 의식적으로 내가 먹는 음식에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대변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소비하기 전 과연 이 음식이 지금 내 몸에 필요한 음식인지, 어디서 생산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유통되었는지 등을 한번 더 질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당히 나는 안 먹는 음식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이후 내 식습관을 지켜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흔한 외식 메뉴가 대부분 보쌈, 치킨, 삼겹살 등 육류 위주인 것도 힘들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음식을 골라 먹기가 눈치 보이기도 한다.

식사시간은 사회적 교류의 시간인데, 남들이 다 'Yes'라 할 때 나만 'No'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특히, 회식 자리에서 "저는 삼겹살을 먹지 않습니다" 고 말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먼저 "안 먹거나 못 먹는 음식이 있으세요?" 물어봐 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우리는 개인의 민감한 식습관에 둔감하다. 나 때문에 상대방이 한 번 더 고민하고 찾아봐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애써 웃으며 고깃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나는 내 건강과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다시 나만의 방식대로 편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저는 삼겹살을 먹지 않는데, 오늘 다른 메뉴는 어떠세요?" 내 식습관을 당당히 표현하고,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혹시 못 드시거나 안 드시는 음식 있으세요?" 타인의 식습관을 존중하고, 기꺼이 그를 위해 더 많은 선택지를 제시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국내 채식 인구도 육류를 의식적으로 덜 소비하는 플렉시테리안을 포함해 1천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곳곳에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채식, 유기농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이를 방증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자신의 식습관과 소비를 통제하고 있다.

소수에 대한 배려는 결국 다양한 선택지를 찾는 일이다. 그리고 선택지가 많을수록 다수를 만족시킬만한 답안은 더 많아진다. 소수를 배려하는 일이 다양성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개개인이 식습관에 좀 더 예민해지고 타인의 예민한 식습관에 관대해지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 큰 갈등이나 어려움 없이 나의 건강과 소비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를 바란다.

#인-잇 #인잇 #김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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