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직을 두고 유럽 국가들이 유럽인이 IMF 총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브렉시트(Brexit)를 앞둔 영국의 유력인사들이 후보군에 거론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와 더불어, 세계 경제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위상이 점차 하락하는 것을 의식한 행보로 분석됩니다.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의 한 EU 공식 석상에서 "프랑스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의 뒤를 이을 IMF의 차기 총재로 유럽연합(EU)의 후보를 원한다"면서 "불필요한 경쟁을 막기 위해 유럽에서 단일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스페인의 나디아 칼비노 경제장관도 이에 동조해 유럽인을 차기 IMF 총재로 지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 IMF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지난주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의 합의에 따라 차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내정됐습니다.
프랑스 출신인 라가르드는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프랑스와 스페인 경제장관이 유럽인 IMF 총재론을 거론하고 나선 것은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IMF의 차기 총재직을 두고 기존의 국제 불문율이 흔들리면서 강대국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2차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의 핵심 기둥이었던 IMF와 세계은행은 유럽과 미국이 합의한 불문율에 따라 각각 유럽과 미국이 총재직을 분점해왔습니다.
IMF의 역대 11명의 총재는 모두 유럽에서 나왔습니다.
이번에 '유럽인 IMF 총재론'을 들고나온 프랑스와 스페인 역시 역대 IMF 총재들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유럽연합 탈퇴를 앞둔 영국에서 차기 후보군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최근 조지 오스본 전 영국 재무장관이 라가르드가 ECB 차기 총재로 내정된 후 친지들에게 자신이 IMF 총재의 최적임자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잇따라 보도됐습니다.
오스본 전 장관의 영국 내 경쟁자로는 임기만료를 앞둔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 총재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출신인 카니 총재는 영국과 아일랜드 시민권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영국인이 만약 IMF 총재로 선출되면 금융위기 회원국에 대한 '구제금융' 전문인 IMF의 75년 역사상 최초가 됩니다.
유럽연합과 결별을 이미 선언하고 탈퇴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영국이 IMF 총재직을 가져가는 것을 유럽 국가들은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유럽인 IMF 총재 후보군에는 불가리아 출신인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세계은행 최고경영자(CEO), 이탈리아 출신인 마리오 드라기 현 ECB 총재, 프랑스 출신인 브누아 쾨르 ECB 이사, 옌스 바이트만 독일연방은행 총재 등이 거론됩니다.
이번에도 유럽이 IMF 총재직을 가져갈 것이라는 관측이 아직은 우세한 편입니다.
최근 미국 출신인 데이비드 맬패스가 세계은행 총재가 됐기 때문에 이번에도 미국과 유럽의 양분 구도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러나 최근 국제 경제에서 유럽의 위상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유럽이 IMF 총재 자리를 미국이나 영국에 빼앗기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