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북, "굶어죽어도 민족자존…외세 의존은 사약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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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1일 노동신문을 통해 '우리의 전진은 줄기차고 억세다'라는 제목을 붙인 장문의 '정론'을 게재했다. '정론'이란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의도와 정책을 주민들에게 설파하기 위해 쓰는 권위 있는 글이다.

북한은 이 글에서 대북제재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음을 다음과 시인했다.

"전후 잿더미도 헤치고 고난의 행군도 해보았지만 현세기의 10년대에 우리(북한)가 겪은 난관은 사실상 공화국의 역사에서 가장 엄혹한 시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세기의 10년대, 즉 2010년대에 북한이 겪은 난관이 북한 역사에서 가장 엄혹한 시련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 시련을 강조하면서 비교대상으로 전후복구 시기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꺼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복구 시기와 1990년대 중반 수 백만이 굶어죽었다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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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역사에서 등장하는 '고난의 행군'

이해를 돕기 위해 북한 역사에서 등장하는 '고난의 행군'에 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다. 북한은 지금까지 세 차례의 '고난의 행군' 시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1938년 12월부터 1939년 1월까지의 시기로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 빨치산 부대가 일본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감행한 행군을 말한다. 이 시기 김일성 부대는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모진 추위와 가슴까지 차오르는 눈길, 식량난을 겪으면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며 행군해야 했다.

북한에서 두 번째로 '고난의 행군'이라는 구호가 등장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이다. 전쟁으로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 복구에 나서야 했던 힘든 시기를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 지칭했다. 세 번째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부터 1997년 말까지이다.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와 대외적 고립, 극심한 경제 침체와 연이은 수해로 수 백만이 굶어죽었다는 얘기가 나왔던 시기이다.

● 노동신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시 노동신문 기사로 돌아가면, 북한이 최근의 시련을 강조하기 위해 비교대상으로 꺼내 든 사례는 모두 역대의 '고난의 행군'이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시기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례, 북한 정권 건립 이후 있었던 두 차례의 '고난의 행군'을 최근의 제재로 인한 어려움과 대비시킨 것이다.

북한이 느끼는 제재에 대한 압박감이 이 정도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작 노동신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그게 아니다. 북한은 노동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굶어죽고 얼어죽을지언정 버릴 수 없는 것이 민족자존이다."

"자존은 어렵고 힘겨운 것이지만 국력을 장성강화시키는 보약과 같다. (외세) 의존은 쉽고 일시적인 향락도 누릴 수 있지만 인민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국력을 쇠퇴몰락시키는 사약과 같다."

북미협상 결렬로 제재 완화가 힘들어졌지만 굶어죽더라도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최근 들어 계속 강조되는 자력갱생의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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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굶어죽어도 자존'이 아니라 굶어죽지 않을 방안 찾아야

북한 최고지도부가 하노이 결렬 이후 어떤 결정을 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노동신문의 이 같은 글도 북미 협상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단 주민들의 사상을 다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보다 더 어려운 시기를 거론하며 굶어죽어도 자존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모습은 북한이 다시 과거로의 회귀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만든다. 지금 북한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굶어죽어도 자존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할 방안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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