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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단독] 상식 밖의 '폭력 지도자' 감싸기…이상한 수영연맹

미루고 미루다 '솜방망이' 징계…징계받아도 17년째 서울시 연맹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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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초 한 수영 클럽의 A 코치는 15살의 중학생 여자 제자를 마대자루와 오리발로 때리고, 머리채를 붙잡고 끌고 가는 등 수차례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민원이 대한체육회를 거쳐 대한수영연맹에도 접수(2009년 10월)됐지만, 수영연맹은 A 코치에게 어떤 징계도 하지 않았습니다. A 코치가 사실을 부인하는 데다, 사법 기관에서 조사 중인 만큼 조사 결과를 보고 재논의하겠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이후 2011년 1월 A 코치는 1심에서 폭행이 인정돼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양형 이유에 보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제자를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하여 자신의 허물을 감추고...(중략)...범행사실을 부인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을 증인으로 신청하여 위증을 교사한 정황이 보이는 등 법정을 마치 연극무대처럼 만들어 놓고 변호인의 세치 혀를 앞세워 이 사건의 진실을 가리고자 하였다'는 이례적인 재판부의 질책까지 있었습니다. A 코치가 어린 제자를 폭행한 뒤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A 코치는 이후 항소에, 상고까지 했지만, 대법원도 2011년 10월 폭행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1심은 물론 대법원의 유죄 판결까지 나온 뒤에도 수영연맹은 징계 위원회(선수위원회)를 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15년 대한체육회로부터 이 부분을 지적받자 뒤늦게 징계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2월 26일에 징계위원회가 열렸으니 A 코치가 폭행한 지 6년, 수영 연맹이 이 사실을 안 지 5년 4개월, 법원 판결이 나오고도 무려 4년 1개월 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모인 선수위원회는 일사천리로 징계를 결정했습니다.

당시 수영연맹 정일청 전무가 "사건 발생 후 5년 이상 시간이 흐른 데다, 그동안 A 코치가 수영계를 떠나 자숙한 점을 참작하자"고 얘기한 뒤 10개월 징계를 제안하자 모두가 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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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 같은 징계 회의 녹취록

이때의 회의 녹취록을 보면 징계에 대한 결정이 얼마나 허술했고, 연맹 임원들이 폭력에 둔감한 지 그 단면이 드러납니다. 먼저 한 임원이 A 코치가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 물어보자, 정일청 전무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대한수영연맹 제6차 선수위원회 녹취록 中 위원 : 사법기관 조사 무슨 형 받았어요? 이 결과는?
정일청 : 아직 그런 건 없고, 폭행에 대해서는 일부 아마 인정이 된 것 같아요.

2009년 폭행 사실을 보고받았을 때는 사법부의 결정을 보고 징계를 논의하자고 해놓고는 사법부의 판결 내용은 알아보지도 않고 징계 회의를 연겁니다. 더구나 폭행 빈도나 정도에 대해서도 전혀 알아보지 않은 채 징계 수위부터 논의했습니다.

대한수영연맹 제6차 선수위원회 녹취록 中 정일청 :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징계를 한 10개월 정도로 우선 주고, 본인한테 해당 통보를 좀 한번 해보는 선에서 하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수영연맹 규정에 따르면 폭력 행위를 한 지도자는 경미한 경우 6개월 이상 3년 미만의 자격정지, 중대한 경우 3년 이상 자격정지에 최고 영구제명을 하게 돼 있는데, 사실 확인도 없이 경미한 폭행으로 규정한 겁니다.

대한수영연맹 선수위원회 규정 제18조(징계)
폭력 행위를 한 선수 또는 지도자
* 경미한 경우 : 6개월 이상 3년 미만의 자격정지
* 중대한 경우 : 3년 이상의 자격정지 또는 영구제명

그리고 징계 결정 후 발언들은 논의 수준 자체를 의심케 했습니다. 10개월의 징계가 자격 정지 기간인지, 출전 정지 기간인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듯 서로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대한수영연맹 제6차 선수위원회 녹취록 中 위원장 : 의의가 더 없으면 그대로 접수하도록 하겠습니다. 10개월에 대한 징계에 대한 사항입니다. 결정하겠습니다.
위원 : 자격정지입니까? 10개월이면?
정일청 : 뭐예요? 국장님! 10개월이라는 게 여기 선수위원회에 나와 있는 게 자격정지죠?
사회자 : 자격정지입니다.

허술했던 이 회의는 이렇게 단 10분 만에 끝났습니다.

● 수영계를 떠난 수영 연맹 이사?

A 코치가 그동안 수영계를 떠나 자숙한 점을 참작하자던 연맹의 말도 사실과 달랐습니다. A 코치는 재판 기간인 2010년 8월에도 우수한 지도자라며 서울시 교육감의 포상을 받았고, 집행유예 기간인 2012년에는 전문생활 스포츠 지도사 심사위원도 했습니다. 특히 A 코치는 2002년부터 줄곧 서울시 수영연맹 이사를 맡아왔는데, 상위 단체인 대한수영연맹이 이 사실조차 몰랐다는 겁니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대한수영연맹은 10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내린 뒤에도 서울시 수영연맹에 이를 알리지 않았고, A 코치는 징계 기간을 포함해 지금까지 무려 17년 이상 서울시 수영연맹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서울시 수영연맹에 문의해보니 '자신들은 대한수영연맹으로부터 징계에 관련한 어떤 공문도 받은 바가 없어서 A 코치가 선수 폭행으로 법원에서 유죄를 받거나, 대한수영연맹의 징계를 받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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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그리고 대한수영연맹과 서울시 수영연맹은 약속이나 한 듯 지금은 그때와 집행부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집행부가 바뀐 건 맞습니다. 당시 대한 수영연맹을 이끌던 이기흥 회장은 2016년 정일청 전무가 횡령과 배임 수재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는 등 수영연맹 간부들의 비리 혐의가 연이어 밝혀지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수영연맹 회장직을 내려놨습니다. 그리고 7개월 만에 대한체육회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해 현재 대한민국 체육계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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