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5천만 국민이 모든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기에 국민의 대표자인 30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해 그들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의사결정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원들은 본인들의 판단에 따라 표를 던진다. 선택의 순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정당에 표를 던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도 있겠지만, 의무는 아니다. 밉든 곱든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기능적으로 전달하는 '대리자'가 아니라 독자적 판단권한을 위임받은 '대표자'기 때문이다.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유권자들은 A를 선호하지만, 국회의원들은 B를 선택할 수 있다. 국회의원 개개인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집합적 결정인 국회의 결정이 국민 전체의 민심과 다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결정의 정당성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독자적 판단 권한을 가진 '대표자'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정치학 개론에 나오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합의한 기본 원칙이다.
● '대표', '대리' 구분 못 한 빗나간 비판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는 현재의 사법 농단 사태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한 탄핵 필요성을 통감하는 의견서를 채택했다. 법관대표회의가 채택한 의견서는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하여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하여 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하여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까지 함께 검토되어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는 데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한다"는 내용이다. 재판 개입 의혹이라는 사법부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행위들이 검찰 수사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누더기가 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견서 채택에 대해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정당성을 부정하는 취지의 기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53명 찬성, 43명 반대, 9명 기권'으로 통과된 해당 결의안에 대해 "탄핵 53명이 법관 2,900명 양심을 대표할 수 있나"라는 비판도 나온다. 회의에 참석한 대표자가 소속 법원의 다수 의견과 상반되는 결정을 해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법관대표회의의 대표성과 채택된 의견서의 정당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는 무지에서 비롯됐거나 의도된 잘못된 비판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그 이름처럼 각급 법원의 '대표자'들이 모인 회의체이다. 소속 법원 의견을 전달하는 '대리자'가 아닌 의사 결정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자'가 모인 회의기구인 것이다. 때문에 각급 법원 대표자들이 소속 법원의 다수 의견과 상반되는 결정을 하더라고 그 결정의 정당성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소속 법원의 의견을 단순히 전달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면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전국법원대리자회의'로 명명됐어야 한다. 별도의 회의 기구를 구성하지 않고, 매 사안마다 전체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될 일이다.
● 기본 원칙에 대한 부정…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탄핵 53명이 법관 2,900명을 대표할 수 있나'라는 비판은 기본 원칙에 대한 부정이다. 이런 식의 비판은 법관대표회의의 의견서가 근소한 차이로 채택된 것에 터 잡고 있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결의안 채택에 반대한 대표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걸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에 그쳤어야 할 비판이 원칙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너무 나가버렸다.
이런 식이라면 국회의 결정에 대해서는 5천만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느냐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재적의원을 300명으로 상정할 경우,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률안은 산술적으로 국회의원 76명의 찬성으로 통과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찬성 76명이 5천만 국민을 대표할 수 있나'라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법관대표회의 의견서의 정당성을 비판하는 측이 이런 식의 비판을 했다는 기억은 과문하지만 없다. 아니 없을 수밖에 없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식의 비판이 나올까. 간단한 질문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법관대표회의의 대표성이 문제라면, 만약 의견서가 53명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을 때 "탄핵 반대 53명이 법관 2900명을 대표할 수 있냐"라는 비판도 제기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법관대표회의의 대표성을 문제 삼는 측이 그렇게 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현재 비판적 의견을 내놓고 있는 측이 더 잘 알고 있을 듯하다. 현재 법관대표회의 대표성에 대한 비판은 결과를 받아들이기 싫어 지나치게 흥분한 결과로 보인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탄핵 결의안 채택은 중대한 이슈인 만큼 전체 판사들의 투표로 결정됐어야 한다'는 식이었다면 생산적 논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 지키고 싶은 것은 동료인가, 사법부의 신뢰인가
법관대표회의 대표성을 비판하고, 의견서를 부정하는 측에서는 으레 "동료 법관에 대한 탄핵을 촉구했다"는 식의 비판을 내놓는다. 결의안 채택에 찬성한 사람들을 '동료의 등에 칼을 꽂은 비정한 사람들'로 규정해 결의안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동료 판사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평소 어울리고 가까이 지냈던 동료, 우리 집단의 구성원에 대해 탄핵이라는, 가혹해 보일 수 있는 수단을 발동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기엔 아무래도 주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법관대표회의의 결정은 현재의 엄중한 상황에 대한 판사들의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동료 판사에 대한 탄핵 필요성에 대해 판사들이 의견서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 있다. 온정주의는 모든 집단에 존재한다. 그것이 집단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사법농단 사태 이전처럼 국민이 판결의 공정성을 믿어주기를, 판결이 독립된 법관의 양심과 법리에 따라 내려진다는 걸 국민이 믿어주길 기대해선 안 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사법부의 신뢰가 지키려고 하는 동료에 의해 파괴됐다는 것, 또 다른 동료는 지키려고 하는 동료에 의해 불이익을 받았거나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은 감안하고서라도 탄핵 대상 등으로 거론되는 동료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후과는 오롯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짊어질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