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온 '민족의 명절' 추석이 찾아왔습니다. 일과 공부로 지친 심신을 따뜻한 가족의 품에서 달랠 수 있는 '황금 연휴'입니다.
올해 추석은 휴가나 연차를 활용하면 최장 9일의 휴일을 확보할 수 있어 연초부터 주목 받았습니다. 추석에 인천국제공항을 드나들 이용객은 올해 설 연휴 하루평균 기록(19만 377명)을 넘어 역대 명절 가운데 최다 기록을 세울 것으로 공항공사는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연휴가 반갑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는 직장인의 절반이 넘는 50.4%가 고향에 가지 않겠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응답한 구직자의 55.2%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런 걸까요?
■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다" 연휴 때마다 꺼려지는 귀향길?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아르바이트 소개 플랫폼 업체 '알바콜'과 함께 성인 1,1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이번 추석에 고향에 가겠다는 응답자는 절반이 채 안 되는 47%로 나타났습니다. 53%의 응답자가 귀향 계획이 없다고 답한 겁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0.4%가 고향에 갈 생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직장을 구하고 있는 구직자의 경우에는 직장인보다 높은 비율인 55.2%가 귀향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구직자 가운데 상당수가 하반기 채용을 준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추석에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이유 가운데는 '고향에 만나러 갈 친지가 없어서'가 23%의 득표로 1위에 선정됐습니다. 40대 응답자(30.3%)와 60대 응답자(46.2%)의 상당수가 특히 고향에 만날 친지가 없다고 답해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고연령대인 60대 이상 응답자의 75%도 고향에서 만날 친지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지방 인구의 유출과 수도권 쏠림 현상 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 "이게 덕담이라고?" 잔소리와 스트레스로 '명절 몸살'까지
고향에 만날 친지가 없는 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왜 귀향길을 마다하고 있을까요? '친지가 없어서' 다음으로 높게 나타난 이유는 '잔소리와 스트레스가 예상돼서 고향에 가지 않겠다'(20%)는 것이었습니다. 20대는 27.6%, 30대는 26.5%가 이런 이유로 귀향길을 피하겠다고 답해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이 추석날 고향에서 듣는 잔소리를 피하길 원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구직자 가운데 28%도 같은 이유로 귀향길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친지들의 덕담이 당사자들에게 부담될 수도 있다는 것이 수치로 나타난 셈입니다. 귀향길이 꺼려지는 이유는 결혼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인 '사람인'이 성인 9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혼 응답자의 33.5%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를 고향에 가기 싫은 이유 1위로 꼽았습니다. 반면 기혼 응답자는 35.3%가 '용돈, 선물 등 많은 지출이 걱정되어서'를 1위로 꼽아 경제적인 이유로 귀향길을 마다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혼 응답자들은 고향에서 만나게 될 친지들 때문에 귀향길을 접었다는 답변도 많았습니다. '친척과 비교될 것 같아서'(19.5%), '주위의 관심이 부담되어서'(19.3%), '내가 취업을 못해서 부모님이 위축될 것 같아서'(13%) 등이 각각 3, 4, 5위로 높은 순위에 올랐습니다. 기혼 응답자들의 경우에는 '처가, 시댁 식구들 대하기 부담스러워서'(14.6%), '제사 음식 준비 등이 힘들어서'(12.6%), '귀성길이 너무 멀어서'(9.5%) 등이 귀향길을 피하는 이유로 집계됐습니다.
■ '취업' '결혼' '월급'…추석 연휴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설문에 응한 성인 10명 가운데 3명은 명절에 가족이나 친지와 다툰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가장 높게 나온 다툼의 원인으로는 '쓸데없이 참견하거나 잔소리해서'(57.6%)로 나타났습니다. 다툰 상대는 '부모'(41.1%)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이 '형제, 자매'(36.9%)로 나타났습니다. 추석 연휴에 오랜만에 만나 나눴던 부모, 형제 사이의 대화가 다툼으로 이어진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일까요? 미혼은 '결혼은 언제 하냐'는 질문이 30.7%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취업은 했니?'(9.6%), '월급은 얼마야?'(8.8%)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걱정하는 마음에 한 선의의 질문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참 듣기 싫은 질문일 수 있다는 겁니다.
기혼 응답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도 비슷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이니?'(13.4%)라는 말이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월급은 얼마야?'(12.6%)가 2위에 올랐습니다. 특히 '아기는 언제 가질 계획이니?'(10.9%)가 3위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숫자가 줄어들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이 부모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듣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부담스러운 질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가족 사이에 말도 못하니"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서로 마음만 멀어지게 되는 결과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상처 주는 질문보다 위로와 배려의 덕담이 오가는 추석 연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인: 감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