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통장 대여자도 보이스피싱 피해자에 배상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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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성 문자메시지 광고를 보고 모르는 이에게 통장을 함부로 빌려줬다가 보이스피싱 사건에 가담한 결과가 된다면 처벌은 면하더라도 거액의 배상책임을 쳐야 할 수도 있어 주의가 요구됩니다.

27일 법률구조공단 등에 따르면 수원지법 제3민사부(양경승 부장판사)는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자 김 모 씨가 통장 명의 제공자 A(32)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고, 김 씨가 청구한 약 2천만 원 중 80%에 해당하는 1천600여만 원을 다른 공범과 함께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정주부인 A 씨는 2016년 10월 스팸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세금 회피를 위해 판매대금을 입금받아 회사에 전달해 줄 사람을 모집. 수고비로 하루 200만 원을 지급'이란 내용이었습니다.

돈이 필요했던 A 씨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곳으로 연락을 했다가 통장 계좌번호를 알려주면서 보이스피싱 사기에 연루됐습니다.

자금 인출책 B 씨가 수사기관에 붙잡혀 지난해 5월 2심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된 것과 달리 단순 통장 대여자인 A 씨는 이 사건에서 참고인 조사만 받고 재판에 넘겨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피해자 김 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통장을 대여한 A 씨에게도 불법 공동행위자로서 함께 피해액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지난해 3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판부는 "계좌를 빌려줄 경우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통 사람이라면 예상할 수 있었던 데다 입금된 돈을 직접 출금해 인출책인 B 씨에게 전달해 범행을 용이하게 했다"며 A 씨가 공동 불법행위자로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 A 씨가 범행 당시 성인이었던 점 ▲ 예정된 출금 수고비가 일당 200만 원에 달한 점 ▲ 통장이 적어도 조세회피 등 불법행위에 사용될 것임을 알았던 점 ▲ 회사가 아닌 마트 앞 등 불특정 장소에서 출금한 돈을 B 씨에게 전달한 점 등도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단 배경으로 들었습니다.

이번 판결 이후 사건은 대법원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2014년 12월 보이스피싱 사기 관련 손해배상 판결에서 통장을 단순 대여한 보이스피싱 사기 연루자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대여자의 사건 가담 정도 등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책임을 조금씩 달리 판단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김 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소속 조필재 변호사는 "이번 항소심 판결은 통장 명의자라도 보이스피싱 피해액 중 상당 부분의 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는 데 경각심을 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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