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시절 벌어진 법관사찰·재판거래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법원과 검찰 간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법원과 검찰 간 갈등 기류는 법원행정처가 보관하는 증거자료를 검찰에 임의제출하는 범위를 둘러싸고 진작에 시작됐다.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6일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된 문건파일 410개를 검찰에 제출했지만, 행정처 컴퓨터 하드디스크 원본은 제출 대상에서 제외했다.
검찰은 제출된 문건파일만으로는 형사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하드디스크 원본 제출을 요구했다.
결국 하드디스크 원본은 제출하지 않고,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입회한 가운데 전·현직 법원행정처 차장과 기획조정실장 등이 사용한 하드디스크에서 수사에 필요한 문서를 추출하는 선으로 잠정 협의가 됐다.
그러나 법원행정처가 기획조정실을 제외한 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 PC 하드디스크와 인사자료, 재판 관련 자료, 내부 이메일과 메신저 송수신 내역,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등 검찰이 요구한 다른 증거자료는 임의제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법원행정처는 "수사상 필요성이나 관련성이 없는 파일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자의 책임을 소홀히 할 수 없다"라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혐의 입증에 필수적인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법원과 검찰 간 신경전은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핵심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더욱 날카로워지는 분위기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김모 전 기획제1심의관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인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임 전 차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에 대한 영장은 대부분 기각됐다.
검찰은 지난 21일 임 전 차장의 자택 및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 자택 등의 나머지 영장이 기각된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에게서 확보한 백업 USB를 토대로 혐의사실을 추가해 24일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했지만, 법원은 25일 새벽 이를 다시 기각했다.
두 번 다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게 기각 사유였다.
인신을 구속하는 구속영장과 달리 압수수색 영장은 혐의 소명에 관한 법원의 요구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전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기각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영장을 재청구할 때 범죄 혐의를 다수 추가했고, 소명자료도 다수 보강한 상태였다"며 법원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증거자료의 임의제출 범위를 놓고 이미 두 기관 간 갈등이 표면화한 상황에서 압수수색 영장까지 기각되자 검찰 내부에서는 "사법부가 공언한 바와 달리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스스럼없이 흘러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수사전략이 노출되는 점을 무릅쓰고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실을 드러낸 것은 증거 확보의 길이 막히자 법원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영장전담 판사의 이력을 두고도 검찰 안팎에서는 중립성 논란이 일고 있다.
첫 번째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10년 박병대 전 처장과 서울고법 재판부에서 함께 근무한 경력이 있다.
두 번째 영장을 기각한 허경호 부장판사는 2011년 서울고법 근무 당시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의 배석판사를 지낸 이력이 있다.
강 전 원장은 임 전 차장에 앞서 2015년까지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냈다.
박 전 처장과 강 전 원장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할 당시도 재판거래나 법관 사찰 의혹이 담긴 문건이 법원행정처에서 생산됐다는 점에서 검찰은 영장 기각결정의 중립성이 우려된다는 시각을 감추지 않고 있다.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중립성 논란 해소를 위해 재판거래 의혹 수사와 관련해 독립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