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의 기원은?…평화로운 그곳 '널문리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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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판문점에는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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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 인근의 한 작은 마을.너른 논밭과 초가집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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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모내기로여름에는 보리 수확으로 분주했던소박한 마을 ‘널문리’에 갑자기 낯선 천막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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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0월 25일.널문리의 작은 주막 앞 콩밭에 세운 천막에서 첫 ‘휴전회담’이 열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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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협상을 하는 과정에서널문리를 한자로 표시할 때 ‘판문’거기에 작은 ‘점포’할 때 ‘점’ 해서‘판문점’ 이 된 거죠.”-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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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널문리 하늘엔중립휴전지대임을 알리는 열기구가 띄워졌고유엔군과 중국군, 북한군이 지내는막사도 속속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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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이 생긴 후전 세계에서 기자들까지 모여들면서마을이 어수선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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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주변으로는 폭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자유로운 활동 공간이었습니다.”-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널문리 사람들은남한·북한 구분 없이묵묵히 삶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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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후 이곳 판문점은남·북한 간 회담을 위한 장소와 남북을 왕래하는 통과지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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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0년 동안 잊고 있었던 널문리의 본래 모습들.2018년 봄, 다시 한번 그곳에서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판문점은 1951년 경기도 파주 널문리 한 작은 시골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널문리 마을은 너른 들판에 벼, 감자, 콩이 자라던 소박한 농촌이었습니다. 38선 부근에 있던 이 동네는 아직 남북 구분 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작은 주막이 있었는데, 판문점은 이 주막을 주변으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판문점'이라는 이름은 이 '널문리 가게'를 한자로 번역한 말입니다.

판문점에서는 휴전회담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동네에는 폭격이 제한됐습니다. 그래서 이 동네는 다른 지역보다 평화로운 동네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글·구성 권수연, 정세림 인턴 / 그래픽 김태화 / 기획 하현종 김유진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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