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외교 드라마' 어떻게 성사?…남·북·미 '의기 투합' 결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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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대담판'이 될 북미 정상회담의 디데이와 장소가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발표'로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지난 3월 8일 한국 특사단을 통해 날라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수락한 지 63일 만에 드디어 '세기의 담판'이 최종 성사된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수면 위에 오르게 된 건 대북 특사단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면담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 훈 국정원장이 지난 3월8일 방미한 것이 계기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의 회담 제안 의사를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의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로 수락 의사를 밝히며 '세기의 담판'을 향한 여정이 시작됐다.

당시 정 실장과 서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 후 백악관 야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러한 사실을 바로 알렸다.

김 위원장이 핵·미사일 실험 자제 약속과 함께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며 조기에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항구적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금년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수락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4월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으나, 정 실장이 '선(先) 남북 정상회담-후(後) 북미 정상회담' 쪽으로 건의해 이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전해진 바 있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공식 가시화된 것은 이날이지만, 전쟁 위기론까지 고조시킨 극한적 대결 모드에서 대화국면으로의 극적인 반전을 이루기 위한 양측의 물밑 모색이 이뤄진 것은 사실 몇 달 전부터였다.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별도의 CIA 팀을 꾸리며 북미 정보당국 간 막후 대화 채널을 가동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미국 측 대표단장이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간 비밀회동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북측의 막판 취소로 틀어진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제안을 수락한 지 며칠 안 돼 자신과 끊임없는 불화설에 시달렸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전격 해고하고 '복심'인 폼페이오 장관을 그 후임에 앉혔다.

이어 22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 '슈퍼 매파'인 존 볼턴을 발탁하는 등 안보·외교라인 진용을 대북강성 이너서클로 재편하며 본격적인 회담 준비에 나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중재자'인 한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메시지를 제외하고 직접 트럼프 대통령의 수락에 대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여기에 김 위원장이 3월 말 집권 6년여 만에 처음으로 북한을 벗어나 방중, 중국과의 관계 복원을 통해 판 흔들기에 나서면서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직후인 부활절 주말(3월 31일∼4월 1일) 폼페이오 장관이 당시 CIA 국장이자 국무장관 내정자 신분으로 비밀리에 방북, 김 위원장과 전격 면담을 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북 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 위원장과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으며,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진짜 기회'가 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폼페이오 장관으로부터 김 위원장과의 면담 사실을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해 자신이 '리틀 로켓맨'이라고 조롱했던 김 위원장에게 '매우 많이 열려 있고 훌륭하다'며 찬사를 보내는 등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후 북한은 4·27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4월 20일 개최된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미사일 실험 중지와 핵실험장 폐기 방침을 발표하고 기존의 핵·경제 병진 노선을 경제 건설 집중노선으로 전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 없이 보상은 없다'고 압박하는 미국 측에 그 진정성을 보이기 위한 선제 조치에 나섰다.

핵 실험장 폐기시 외부 공개 방침도 후속으로 발표했다.

그 사이 날짜와 시간을 두고 북미 간 물밑 조율이 진행돼온 와중에 싱가포르와 몽골 울란바토르 2곳으로 압축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으나 판문점에서 이뤄진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만나는 역사적 장면에 깊은 인상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쪽으로 급격히 쏠리면서 판문점이 유력 후보지로 급부상했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도 판문점에서 열릴 경우 남북미 3국 정상회담이 함께 열리는 한편으로 종전선언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폼페이오 장관 등 주변에서는 판문점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오히려 북미 정상회담 자체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마음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 등외교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이 비핵화의 목표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에서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대량파괴무기(WMD) 폐기'(PVID)로 격상, 허들을 높이고 북한이 반발하면서 난기류가 형성되는 듯했다.

시간과 장소를 둘러싸고 "다 결정됐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복되는 발언에도 불구, 발표도 지연되면서 양측간 기 싸움과 맞물려 북미 정상회담 준비 전선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채널 고정"이라며 임박했음을 예고한 억류 미국인 3인의 석방도 군불 때기만 이어지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영구적 비핵화' 압박 속에 다급해진 김 위원장이 이번에는 비행기로 다시 전격 방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긴장이 고조됐으나, 곧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8일 폼페이오 장관의 재방북 소식을 공개적으로 알리면서 상황은 또다시 급반전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재방북에서 김 위원장과 다시 만나 날짜와 장소를 최종 조율했고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을 맞바꾸는 '빅딜' 방안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진전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으로부터 억류자 3인 석방이라는 '선물'을 받고 10일 새벽 이들과 함께 전용기 편으로 미국 땅을 다시 밟았고, 그로부터 몇 시간 지난 이 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6월12일 싱가포르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라는 빅 뉴스를 전세계에 타전했다.

몇 차례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극적 순간을 거쳐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상회담 개최 시기도 '5월∼6월초'→'3∼4주 이내'(5월 이내)→6월12일로 정해지까지 혼선을 빚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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