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듣는 뉴스룸

[골룸] 북적북적 135 : 우아한지 어떤지…알 듯 모를 듯


동영상 표시하기

▶ 오디오 플레이어를 클릭하면 휴대전화 잠금 상태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디오 플레이어로 듣기

"오카다는 우아하군."

오늘 낮에 직원 식당은 웬일로 만원이었다. 딱 한 자리 비어 있던 테이블에는 식후의 커피를 마시는 영업부장 사쿠라자키 씨가 있었다. 나는 사쿠라자키 씨 맞은편에 앉았다... 회의할 때조차도 말수가 적고 괜한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건만 느닷없이 안쪽 높은 직구를 던졌다.

"우아하다고요? 아닙니다."

영업부장은 씩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온 '우아하다'의 정의입니다. '우아함'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냥 막 적어보는, 저의 우아함에 대한 이미지는 대강 이렇습니다. 

키가 크거나 비율이 좋아서 아무튼 길어 보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새침하다기보다는 차분한 자태로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날은 선선하고 햇살도 강렬하지는 않은 어느 가을날 오후, 한적한 공원 정도가 배경으로 좋겠네요. 이미지로는 그런 게 저의 우아함... 어떤 책인지가 물론 중요한데, 이 작가의 책이면 딱일 것 같습니다.  작년 여름이 끝날 무렵 저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청취하신 분들 반응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다른 소설을 가져왔습니다. '우아함'이라는 화두를 한 중년 남성의 삶에 빗댄 것처럼도 느껴지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맨 처음 읽은 대목은, 소설의 주인공인 오카다 씨가 '우아하다'는 평가를 처음 듣는 장면입니다. 직장 동료의 품평인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40대 후반의 남성, 출판사에 다니고 스무 살 넘은 아들은 미국에 유학가 있습니다. 부인은 갑자기 이혼을 요구합니다. 그 뒤로 벌어지는 사건들... 뭔가 통속적인 것 같기도 하고 설마... 싶기도 합니다.

"새로 시작할 혼자만의 생활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이미지가 있었다. 자연림이 남아 있는 공원이 근처에 있을 것. 잔디밭이 환하게 펼쳐진 공원이 아니라, 나이를 많이 먹은 거목이 우뚝 솟았고 놀이기구 따위 없는 살풍경한 공원이 좋겠다. 그리고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할 수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일 것. 헤어진 아내가 들으면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느냐며 당장 얼굴을 찡그릴 듯한 계획이다."

"그렇게 우아한, 빈틈없는 생활에 여자가 끼어드는 건 쉽지 않아. 자기가 잡음이랄지, 이물이 되지 않을까 싶으니까. 연애에 푹 빠져 있을 수 있는 건 처음 석 달, 길어봤자 반년이잖아? 그 뒤로는 점점 냉정해져서 거기서부턴 서로가 상대방을 어떻게 인정하느냐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다시 씨의 오래된 집에 구경 가도 돼?’

가나의 메일은 아주 간단했다. 거기에 쓰여 있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갓 세탁한 흰 시트처럼 무덤덤하고 그저 바람에 펄럭 펄럭 날렸다. 나도 따라 하듯 어디까지나 무심하게 승낙하는 답신을 보냈다. 메일이 오간 끝에 이번 주 토요일에 놀러 오는 것으로 약속이 잡혔다. 목소리를 들을 일도 없이 뭔가를 정하는 것은 편하다면 편하지만 뉘앙스를 알 수 없으니 점점 불안해진다.

혼자된 이 남자는 집을 뚝딱뚝딱 고쳐서 잘 살게 될까요, 아니면 집에서 유령이 나온다거나 살인 사건 같은 범죄에 휘말린다거나 집 뒷마당 우물에 들어갔더니 다른 세계와 연결된다거나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작가의 전작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들었던 분이라면 설마 그러겠어하실 텐데... 그렇죠, 마쓰이에 마사이가 그럴 리가. 

하지만 사건은 벌어집니다. 그런데 '우아함'은 언제 나오는 거야, 싶으실 수 있겠는데… 읽다 보면 나오긴 합니다. 알 듯 모를 듯하여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이라고 이름 지었나 싶어요.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소설에 비해 기름기가 많이 빠져 있어 저에겐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출판사 비채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 <골룸: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는 '팟빵'이나 '아이튠즈'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PC로 접속하기

- '팟빵' 모바일로 접속하기

- '팟빵' 아이튠즈로 접속하기

댓글
댓글 표시하기
골라듣는 뉴스룸
기사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