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여정의 '역설'…'모' 아니면 '도' 기로에 선 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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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였던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공개됐습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명단에 올랐습니다. 통일부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축하하기 위한 방문이라는 취지에 부합되게 노동당, 정부, 체육계 관련 인사로 의미 있게 구성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폐회식 때 찾아온 실세 3인방(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을 뛰어넘는다는 게 정부 안팎의 평가입니다. 청와대조차 "북한의 이번 대표단은 동계올림픽 축하와 함께,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북쪽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으로서, 노동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고 공식 논평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 靑 "상상 못했던 좋은 소식"

이런 모든 기대감은 아시다시피 김여정이란 인물에서 출발합니다. 6·25 이후 처음 남측 땅을 밟는 이른바 '백두혈통'이기 때문입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백두혈통을 해외에 사절로 보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며 "좋은 소식"이라고 평가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김여정은 단순한 혈육을 넘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 사실상의 정권 2인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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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은 2014년 우리 차관급인 선전선동부 부부장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 10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됐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포함돼 있는 정치국은 후보위원을 합해도 전체 인원이 3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권력의 핵심입니다. 김여정은 지난해 12월 세포위원장 대회 때 주석단 맨 앞줄에 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가 '상상 못했던' 이라고 한 건 그만큼 파격적인 일이라는 뜻일 뿐 정말 예상을 못했던 건 아닙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휘와 리선균은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한 명이 누구냐 생각해 보면, 최룡해 아니면 김여정이다. (이후) 김영남이 단장되면서 같은 노동당 조직지도라인인 최룡해는 올 필요가 없다고 봤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럼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인사가 한 명 와야 한다. 그건 김여정 밖에 없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3개 부서가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통일전선부이니까 (그 가운데서 한 명씩 오는 그림이면 딱 맞는 셈이다.)"라고 말해 청와대 역시 김여정 방남 가능성에 대비해왔음을 내비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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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의 카드' 압박 나선 北-美

김여정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본인을 제외하면 북한이 보낼 수 있는 말 그대로 최고위 인사입니다. 단순한 혈육을 넘어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김 위원장을 '보좌'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형식으로는 국가수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내용면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 김여정을 함께 보냈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번 평창 올림픽에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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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위급 대표 단장으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낙점했습니다. 행정부 내 2인자인 것은 물론 집권당인 공화당 내 실력자로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로 미 정계에서도 신망이 두터운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이 폐회식에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할 예정입니다.

미국과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꺼낼 수 있는 '최상의 카드'로 우리 정부에 성의를 표시한 건데, 문제는 양측의 목적이 정반대라는 데 있습니다. 북한은 이른바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국제 사회의 제재와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할 게 뻔합니다. '핵무력은 전적으로 미국을 향한 거다'라는 북한 측 주장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반면 미국은 평창 올림픽이 자칫 국제 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 전략에 차질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며 이를 공고히 하는 분위기입니다. 국제 제재가 조금씩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판단되는 이 시점에 평창 올림픽이 이를 이완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정부가 제재 압박 기조를 거듭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남북 대화나 평화 모드에 대해 꺼림칙해 하는 이유입니다.

● '동맹이나 동족이냐' 그것이 문제?

북-미 모두 '최고의 패'를 꺼내 들고 우리 정부에게 러브 콜을 보내고 있는 건 고마운 일이나 문제는 양측 요구 사항에 도무지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말이 좋아 '러브 콜'이지 사실상 북한과 미국에게 양자택일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동족이냐 동맹이냐 그것이 문제'라는 건데 우리에게 답은 이도 저도 아닌 '핵' 일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동족이라도 잊을만하면 '불바다' 운운하는 그들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순 없습니다. 반대로 핵과 그에 따른 전쟁 위험을 모른 채 한다면 동맹도 무의미합니다. 핵은 동족과 동맹을 넘어 생존의 문제인 까닭입니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접근도 위험하지만 어정쩡한 줄타기로 미국과 북한 양쪽 모두에게 신뢰를 잃는 것 또한 최악이 될 수 있습니다.

새 정부가 강조해 온 '대화를 통한 해결'의 무대는 만들어졌습니다. '모가 될지 도가 될지' 가늠할 수 없지만 북미 양측에서 최상의 카드도 확보했습니다. 남북 문제에 묻혀서 사실상 '올림픽'은 실종되는 작지 않은 대가도 치렀습니다. 선수들은 4년 뒤를 기약할 수 있지만 우리 정부에게는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청와대가 김여정의 방남에도 대비해왔다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한반도 명운을 건 평창 대전은 내일(9일)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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