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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불타버린 고속철…체면 구긴 中 철도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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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자랑하는 고속철, 까오티에 G281호는 25일 아침 6시 30분에 산둥성 칭다오시를 출발했습니다. 평균 시속 200킬로미터 가까이 달리는 G281호의 목적지는 저장성 항저우입니다. 이동 거리는 1,269km. 서울에서 부산을 한번 왕복한 뒤 다시 부산 찍고 대구까지 올라올만한 거리입니다. 소요 시간은 불과 7시간. 중국이 최근 내놓은 까오티에 최신 기종에 비하면 G281호는 이미 구형 고속철인데도 이 정도 수준입니다.

출발 후 5시간쯤 달린 G281호가 안후이성 띵위안 역을 향하고 있을 때쯤이었습니다. 갑자기 고속철 안이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고속철 승무원들이 "객실에서 불이 났다"고 알렸기 때문입니다. 불이 난 곳은 2번 객차였습니다. 즉시 G281호는 띵위안 역에 멈췄고, 공포에 질린 승객들은 앞다퉈 열차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6번 객차에 타고 있던 한 승객은 자신이 열차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2번 객차에서 짙은 연기가 치솟고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G281호가 달리는 과정에 뭔가 이상이 발생해 불이 붙었고, 띵위안 역에 정차했을 때는 객차가 활활 탈 정도로 불길이 치솟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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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신고를 받은 소방차 3대와 소방관 17명이 출동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지 30분 정도가 지난 뒤였습니다. 소방관들은 20여분 만에 불길을 잡았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지 1시간 정도만에 완전 진화된 셈입니다. 그런데 2호 객차 상태가 아주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불에 탄 객차 부분은 형체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승객들은 모두 긴급 대피했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고속철 운행에 큰 혼잡이 빚어졌습니다. 오후 2시 45분에야 다시 운행이 시작됐는데, 그동안 14대의 고속철 운행이 취소됐고, 30대의 열차가 3시간이나 늦게 지연 출발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화재 원인은 '고속철내 전기설비 이상'이라고만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국은 조사를 계속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설사 자세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더라도, 중국 사회 특성상 그 내용이 외부로 자세히 알려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중국 매체들은 이번 화재가 신속하게 진압됐고, 특히 사상자가 없다는 점을 내세우며 사고 처리를 잘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열차에서 화재가 난 이번 사고는 '철도 굴기'를 외쳐온 중국으로선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알려진대로 고속철과 철도망에 대한 중국의 자부심은 엄청납니다. 시속 400km로 달릴 수 있는 푸싱호를 앞세워 베이징과 상하이를 4시간 남짓에 주파한다고 자랑합니다. 중국 고속철의 경쟁자는 다른 나라 고속철이 아니라 비행기라고 하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닙니다. 일본,프랑스,독일로부터 이전 받은 기술로 고속철 사업을 시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청출어람 수준을 넘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임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고속철 제조 뿐 아니라 중국 대륙 전체를 촘촘하게 연결하고 있는 고속철도망도 중국의 자존심입니다. 지난해 말 현재 총 12만7,000㎞의 철도 구간 중 2만5,000㎞가 고속철 구간입니다. 내후년까지 고속철 구간을 3만km로 늘리고, 2025년까지 3만8천km까지 늘릴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최첨단 기술을 집중시켜 모바일 결제나 음식 배달, 무료 와이파이, 안면 인식 출입시스템까지 도입해 그동안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던 철도 서비스도 세계 최고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중국의 철도 굴기 자부심은 불타버린 객차처럼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중국의 네티즌은 "일본 고속철 누수 사고를 비웃던 게 엊그제였는데, 이번엔 중국이 제대로 망신살이 뻗쳤다."고 반응했습니다. 다른 네티즌은 "만약 화재가 발생한 곳이 띵위안 역 근처가 아니라 다리 위나 터널 이었으면 어쩔뻔했냐?"는 아찔한 얘기도 했습니다. "지나치게 속도 자랑만 했던 거 아니냐"는 반성의 글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안전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 덕목을 잊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은 중국 당국이 가장 가슴 찔린 지적임에 틀림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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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CTV PLU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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