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파헤치다 암살된 몰타 기자 장례식, 애도 속 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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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 사회 곳곳의 부패를 가차 없이 파헤치다 암살된 몰타 탐사보도 전문 기자의 장례식이 사건 발생 약 20일 만에 엄수됐다.

3일 몰타 북부 모스타의 성당에서 지난달 차량 폭발로 숨진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기자의 장례식이 가족과 친지 등 약 2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직접 만든 블로그에 여야를 막론한 고위 정치인들과 몰타 유력 인사들의 비리를 쉼 없이 폭로해 '1인 위키리크스'라는 평가를 받아온 갈리치아 기자는 지난달 16일 소형차를 몰고 외출하다가 차량에 설치된 폭발물이 터지며 자택 근처에서 폭사했다.

올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언급된 한 회사의 소유주가 조지프 무스카트 총리의 부인이라고 언급해 몰타의 조기 총선을 촉발한 갈리치아 기자의 죽음은 평화로운 휴양지로 비치던 인구 43만 명의 유럽연합(EU) 최소국 몰타 이면의 그림자를 드러내며 국제 사회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몰타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가 대낮에 끔찍하게 피살된 사건에 쏠린 국민적 분노와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갈리치아 기자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몰렸고, 수백 명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바깥 광장에서 그를 애도했다.

장례식에는 유럽연합(EU)을 대표해 안토니오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러나, 조지프 무스카트 몰타 총리 등 몰타 고위 정치인들은 유족들의 거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어머니에 이어 탐사보도 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맏아들을 비롯한 갈리치아 기자의 장성한 세 아들은 사건 직후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풍토를 만들며 몰타를 '마피아 국가'로 몰아가고 있다"며 무스카트 총리의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갈리치아 기자는 그동안 무스카트 총리는 물론 그의 측근들의 비리를 연달아 들춰 총리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에겐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암살 직전 갈리치아 기자를 상대로 제기된 명예 훼손 건수만 40여 건이 넘을 정도였다.

갈리치아 기자의 폭로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무스카트 총리는 그러나 지난 6월 조기총선을 소집하는 승부수를 던졌고, 최근 EU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몰타의 경제 호황에 힘입어 보란듯이 무난히 연임에 성공했다.

유족에 막혀 총리가 장례식에 참석하지는 못했으나 몰타 정부는 이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해 갈리치아 기자에게 예우를 갖췄다.

장례 미사를 집전한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는 "갈리치아 기자의 살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은 인간의 심판에서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신의 심판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며 조속한 회개와 자수를 촉구했다.

몰타 정부는 갈리치아 기자 암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제보자에게 100만 유로(약 13억원)의 사례금을 내걸었으나, 몰타 경찰은 아직 사건에 대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시클루나 대주교는 또 동료 기자들에게는 두려움 없이 진실을 밝히는 데 정진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사람들의 눈과 귀, 입 노릇을 하는 여러분들의 소명에 결코 지쳐서는 안된다"며 "두려움 없이, 그리고 진실을 충분히 존중하며 여러분들의 사명을 지속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장례 미사를 앞두고는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과 BBC, 파이낸셜 타임스, 이탈리아 라 레푸블리카,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 프랑스 르 몽드, 스페인 엘 파이스 등 서방 주요 언론사 8곳이 갈리치아 기자의 암살을 둘러싼 진실을 밝혀줄 것을 촉구하며 EU에 보낸 서한이 공개됐다.

이들 8개 언론사의 편집장은 프란스 티메르만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갈리치아 기자의 죽음이 철저히 조사될 수 있도록, 그리고 몰타와 전 세계에서 공익을 위해 일하는 기자들에게 분명한 지지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했다.

EU 집행위원회도 브뤼셀 본부에 조기를 내걸고 갈라치아 기자를 추모했다.

EU는 이날 낸 성명에서 "갈리치아 기자를 겨냥한 끔찍한 공격을 규탄한다. 심층 취재를 하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이를 보도하는 기자의 권리는 우리의 핵심 가치이며 시대를 막론하고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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