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름을 대면 알만한 인공지능(AI)들은 대부분 스피커에 삽니다. 스피커에 대고 "조명 꺼줘"라고 말하면 인공지능 스피커가 "네"라고 대답한 뒤 집 안의 조명을 꺼줍니다. 요즘 이런 '인공지능 스피커'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도 말 한마디로 켜고 끌 수 있습니다. 보통 'AI 스피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스피커일까요?
● 인공지능에게 '집안일' 시키는 시대
이 인공지능 (AI) 스피커의 보급이 늘면서, 많은 사람들이 거실에 앉아 '스피커'와 말을 합니다. 정확히는 스피커에 살고 있는 인공지능과 얘기하는 것이겠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피커에게 일을 시키는 세상'이 이렇게 "훅" 다가올 거라고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AI 스피커가 하는 역할은 'IOT', 즉 '사물인터넷'의 중심 역할입니다. 별로 친숙하지 않은 표현인데, 쉽게 말해서 스피커가 내 일을 대신 해주는 일종의 '집사'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이 '스피커 집사님'이 해주시는 일, 즉 현재까지 AI 스피커가 할 수 있는 일들은 "TV 켜줘" "불 켜줘" "공기청정기 켜줘" 그리고 "외출 모드(이러면 조명 꺼지고, TV 꺼지고, 공기청정기 꺼집니다)" 같은 것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용자는 영화에 나오는 '마님' 혹은 '도련님'이 될 수 있는 것이고, AI 스피커는 집사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 그런데 왜 집사 역할을 '스피커'가 맡았을까요?
전자업체나 통신업체들은, 한때 TV나 냉장고와 얘기하는 세상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TV나 냉장고에게 말을 걸어서 집안의 모든 전자 기기를 통제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인간과 대화하며 집 안의 모든 전자기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의 중심' 역할을 하는 TV나 냉장고를 내놨던 전자회사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TV 셋톱박스 같은 다른 전자 제품을 IOT의 중심으로 밀고 있는 회사도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이제 대세는 스피커입니다. 아마존, 구글 같은 외국기업, SKT, 네이버, 카카오 같은 국내 기업들이 모두 스피커 안에 AI를 모셔놨습니다.
● TV는 비싸고, 냉장고는 멀고…"스피커는 싸고 가볍다"
스피커를 선택한 국내 기업 담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스피커와 마이크가 탑재돼 있는 게 스피커이고요. 가볍고, 싸고, 그리고 항상 저희가 생활하는 거실에 딱 놓여있습니다"
이용자가 말을 걸어서, AI가 대답하려면 당연히 기계에 스피커가 부탁 되어야 하겠지요. 즉 로봇이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려면 스피커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스피커가 자체적으로 'AI 혹은 로봇 역할'을 하도록 한 겁니다. "스피커를 부착하는 게 아니라 그냥 스피커가 그 일을 하게 하자"는 생각인 겁니다.
또 스피커는 가격도 상대적으로 쌉니다. TV가 사물인터넷의 중심 역할을 한다고 하면, 방방마다 TV를 설치해야 하는데, TV는 분명히 비싼 가전제품이죠. 스피커도 비싸다면 비싸다고 할 수 있겠지만, TV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겠죠. 가벼워서 위치 이동도 편리하죠. 거실에 놨다가, 안방에 놨다가, 아이 방에 놨다가. 모두 가능한 겁니다.
냉장고는 어떨까요? 한때 스마트 냉장고의 등장이 화제였고, 여전히 '부족한 음식을 알아서 채워주는 스마트 냉장고'가 화제이긴 하지만, AI의 중심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부엌에 있는 냉장고에 AI가 산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식탁에서 식사를 할 때는 괜찮을지 몰라도, 거실에 앉아 TV를 볼 때 뭔가 시킬 일이 있다면 우리는 너무 큰 소리로 냉장고와 얘기해야 할 겁니다. 냉장고에 뭔가를 마시러 갔을 때 그곳에 사는 AI에게 "우유가 떨어졌는데, 우유 주문해줘"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거실에 앉아 "냉장고 AI! 분위기 있는 음악 틀어줘!"라고 소리를 치는 건 누가 봐도 합리적이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냉장고는 음식 재료 주문해주는 '스마트 냉장고'처럼 주방만 책임지는 역할에 무게가 실리게 됐습니다.
● AI는 왜 스피커에 살게 됐나?…아마존의 승리?
여러 합리적인 이유에도 불구하고, AI 스피커의 성공에 대해 "아마존 덕분이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아니다"라고 큰소리칠만한 회사는 없습니다. 유명 전자회사들이 자신들의 제품인 TV나 냉장고에 인공지능을 넣어놓고, "자, 우리 냉장고와 얘기하세요", "아니요, 우리 TV에게 시키세요"라고 했지만, 큰 호응을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아마존의 AI 스피커 '에코'가 큰 호응을 받게 됩니다. 큰 전자회사, 통신사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소비자에게 "얘와 얘기하세요"라고 강요했던 반면, 아마존은 가볍고, 이동이 쉽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스피커를 골랐고, 소비자들은 그 선택에 손을 들어준 겁니다. 여하튼 '성공한 AI 집사'는 스피커가 맡게 됐습니다.
● '로봇' 아니면 '홀로그램'
LG유플러스는 네이버의 AI 플랫폼을 탑재한 제품을 올해 말까지 내놓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역시 스피커입니다. 현재는 분명히 스피커가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스피커는 아닐 겁니다. 스피커는 작고, 싸고, 가볍지만, 우리를 따라다닐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시키려면 우리 바로 옆에 있어야 하고, '어디에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복도에서도 일을 시키고, 화장실에서도 일을 시키고, 베란다에서도 일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첫 번째는 로봇입니다. 위의 사진은 LG전자의 로봇인데, 아직 이쁜 이름은 없다고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승무원과 비슷합니다만, 이동성이 없는 스피커보다는 로봇이 그 역할을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LG경제연구원의 진석용 연구위원은 "대표적인 사례로 소프트 뱅크의 페퍼로 볼 수가 있는데요. 페퍼 같은 경우는 말을 듣고, 말을 할 수가 있고 또 스스로 보고, 행동을 하고 또 가슴에 달린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페퍼의 생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거기서 더 나아가서 감성적인 소통도 가능합니다. 결국 로봇 인공지능이 대세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번째는 3차원 홀로그램입니다. SF 영화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술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통신을 할 때 그 사람의 형태가 내 앞에 펼쳐지면서 잔소리를 하죠. 그게 바로 3차원 홀로그램입니다. 집안에서 일을 시킬 수 있는 일종의 '집사'가 내가 부르면 바로 내 앞에 나온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집안 어디에나 있는 겁니다.
이런 기술들이 모두 언제 실현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이 기술을 이용하는 순간이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AI 스피커도 어느 날 문득,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됐죠.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AI 스피커가 하는 '집사' 역할이 어떻게 바뀌고, 누가 대신할지도, '인공지능 시대'의 중요한 관심거리인 겁니다.
물론 당장은 '하이 빅스비'께서 쉬운 말부터 제대로 알아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자꾸 엉뚱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불평하는 날도 얼마 안 남았으리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