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몰래 끼워 파는 통신 서비스, 왜 반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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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각 장애 할머니 몰래 6년간 빼간 전화요금

"난 아무것도 몰라" 85세 김 모 할머니는 이 말만 반복했습니다. 청각장애 6급에 눈도 어둡고, 글도 몰라 의사소통도 쉽지 않은 겁니다. 한두 마디만 나눠도 홀로 계약이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는데, CJ헬로비전은 6년 전 할머니 댁에 인터넷 전화를 설치했고 그 뒤로 매달 2천 2백 원 씩 전화 요금을 꼬박꼬박 챙겨갔습니다.

사용 이력이 없는 건 물론이고, 할머니는 인터넷 전화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댁을 찾은 아들이 고지서를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전화요금이 빠져나가 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들은 사업 실패한 뒤 지방에서 따로 살고 있습니다.)

● "가입 경위 모르쇠?…끊임없는 분쟁"

끝내 김 할머니가 어떻게 인터넷 전화에 가입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CJ헬로비전은, 6년 전 김 할머니댁의 케이블방송이 디지털로 전환됐는데 당시 인터넷전화가 추가 신청됐다는 설명만했습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할머니와의 계약이 어떻게 체결됐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못한겁니다.

할머니 몰래 인터넷전화를 끼워 판매했든지, 나아가 명의를 도용해 신규 가입했을 우려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현행법(전기통신사업법 제50조2항)에서는 이런 식의 이용자의 이익 침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블러드오션으로 접어든 통신 시장에서 유사 피해는 수시로 발생합니다.

기사에도 언급했듯 LG유플러스 역시 두루뭉술하게 가정용 IOT 상품을 끼워 판매해 2년간 요금을 받아 챙겼고, 타 통신사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CJ헬로비전의 이 사건을 꼼꼼히 짚어 보는 이유는 분쟁 발생부터 피해 구제까지 소비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경우는 계약 당사자가 시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빼도박도 못한 채 잘못을 인정했지만, 상당수는 소비자가 설명을 듣고도 잊었다는 쪽으로 결론납니다.

● "안 들키면 쌈짓돈, 구두 경고만?"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돌아봤더니 답은 간답했습니다. 위법하게 몰래 상품을 끼워 팔아도 사업자 입장에서 손해날 일이 없는 겁니다. 안들키면 수년간 '공돈'을 챙길 수 있고, 들킨 뒤에는 몰래 챙긴 돈만 돌려주면 그만입니다. 아니면, "소비자가 기억 못하니, 일부만 주겠다"며 버틸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 CJ헬로비전 역시 "6년치 전화 요금 가운데, 1년치만 돌려주겠다"며 두 달 가까이 버티다 거듭된 민원에 취재까지 들어가자 그때서야 전액을 돌려줬습니다. 물론, 현행법에서는 이런 경우 위법하게 얻은 매출의 3%내에서 사업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언론에 보도된 단 한 건으로는 '구두 경고'만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유사 피해 실태 조사는커녕 해당 업체에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더는 악다구니쓰는 일 없길"

4기 방송통신위원회가 구성될 때 '통신 분야 전문가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력만 보면 미디어 쪽 전문가만 모인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한달 간 4기 방통위를 취재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통신업계에 몸담았던 이력이 없는 만큼 오히려 소비자 입장에서 제도 개선이 이뤄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긴겁니다. 실제, 방송통신위원장과 상임위원이 모여 안건을 의결 하는 위원회 회의에서도 이용자 시각에서 바라본 통신 서비스에 대한 의견이 다수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론 이렇게 '무한 반복'되는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도 방통위의 대응이 조금은 신속하고, 엄격해 질거라 기대해봅니다. 소비자가 몇달씩 악다구니 쓰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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