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수백억 원대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의 혐의에 대해 처음 입을 열었습니다.
지난 4월 7일 정식 재판이 시작된 이래 넉 달 만입니다.
이번 재판은 50회째 공판입니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발언한 것도 지난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 청문회 이후 처음입니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이 부회장은 어제 오후 4시 35분 자신의 피고인 신문 차례가 되자 편의상 재판부를 마주 보는 증인석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함께 기소된 피고인들 가운데 마지막 순서였습니다.
구속 상태지만 매번 사복을 입고 나온 이 부회장은 어제도 흰색 와이셔츠에 정장 차림으로 출석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재판부가 "불리한 내용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진술 거부권을 고지하자 "네"라고 답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어제 공동 피고인인 최지성 전 그룹 미래전략실장이 신문 받을 때만 해도 가끔 턱을 괴는 등 다소 여유 있는 모습이 포착됐지만, 본인이 직접 질문을 받게 되자 평소의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신문 초반 긴장한 듯 헛기침을 하거나, 특검 질문을 놓쳐 "다시 질문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상황에 적응한 듯 이후 특검 질문엔 신중하게 대답했습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과 이 부회장의 면담 내용을 정리한 문건을 실물 화상기로 제시하며 질문하자, 이 부회장은 화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 부분은 내가 말한 것 같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매각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려는 미전실 결정에 자신이 반대 의견을 냈다고 길게 설명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합병이 전자였으면 더 확실하게 얘기했을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한 뒤 "직원들이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경쟁력을 쌓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삼성그룹이나 미래전략실 내에서 자신의 지위·위치를 묻는 특검 질문엔 "저는 한 번도 미전실에 소속된 적이 없다"며, "다만, 제 자신이 삼성전자 일을 계속 해왔지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다른 계열사 업무에 대한 관심이나 책임감은 조금 늘었다"고 대답에 뜸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흥분한 모습을 보인 대목도 있었습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3차 독대 전후 사정을 설명하던 중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살아계실 때부터"라고 말했다가 다급히 "회장님이 건재하실 때부터"라고 정정했습니다.
어제 재판은 밤 11시 20분쯤 종료됐습니다.
저녁 식사와 휴식을 위해 2차례에 걸쳐 1시간 45분가량 휴정한 시간을 빼면 이 부회장의 신문 시간은 총 5시간에 달했습니다.
특검 측 주신문은 끝났고 변호인 반대 신문은 다 마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오늘 오전 10시 재판을 열어 변호인의 반대 신문을 이어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한편, 재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은 이 부회장의 육성 진술을 들으려는 방청객과 취재진, 삼성 관계자들로 만원을 이뤘습니다.
외신 기자들까지 몰리는 등 취재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일반 방청객들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어제 새벽 6시부터 서초동 법원종합청사에 도착해 입장 순서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자리 쟁탈전'이 치열해 방청객들은 자체적으로 임시 대기표를 만들어 '새치기'를 막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