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회상열차 이르쿠츠크 도착…"할머니 생각에 눈물 왈칵"


80년 전 고려인 강제이주 수난의 길을 따라가는 '극동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회상열차' 탐사단이 27일 오후(현지시간)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츠크에 발을 디뎠다.

바이칼호 남쪽 앙가라강을 끼고 있는 이르쿠츠크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간에 위치한 시베리아의 중심 도시로 항일운동가들의 자취가 어려 있는 곳이다.

1920년 이곳에서 한인 볼셰비키당원들이 공산당 조직을 결성했고 이듬해에는 자유(스보보드니)시 참변으로 와해된 독립군 잔류 병력이 포로로 끌려가 수용됐다.

이범석·이범윤 등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유배되기도 했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24일 오후 블라디보스토크역을 출발한 84명의 회상열차 탐사단원은 이날 이르쿠츠크역 플랫폼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르쿠츠크 고려인문화센터 여성 회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문삼순(65) 부회장은 이부영·함세웅 공동대회장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이렇게 많은 분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끌려가신 길을 따라가고 있다니 참 고맙다"며 반가워했다.

이부영 대회장은 "그 힘든 세월 속에서도 조국을 잊지 않고 계신 분들을 보니 우리나라의 할머니들이 생각난다"면서 "고려인 우라(러시아어로 '만세'라는 뜻)! 한민족 우라!"를 외쳤다.

일반시민으로 회상열차에 탑승한 엄동현(61) 씨도 "열차에서 내려 치마저고리 차림의 고려인 여성분들을 보는 순간 돌아가신 할머니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탐사단원들은 2차대전 참전 희생자들을 기리는 '영원의 불꽃', '모스크바로 가는 문'이라는 이름의 개선문, 시베리아횡단철도 착공을 명령한 황제 알렉산드르 3세 동상 등 이르쿠츠크의 주요 명소를 둘러본 뒤 동상 인근 이르쿠츠크 국립사범대 도서관 앞에서 이창주 집행위원장(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석좌교수)의 특강을 들었다.

이 위원장은 "이 도서관 자리가 1920년 1월 22일 오하묵·김철훈 등이 이르쿠츠크 공산당 한인지부(그해 9월 고려공산당 중앙총회로 개칭)를 결성한 곳"이라면서 "당시 우국지사들이 어떻게 국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민족을 말살시키려는 일제에 저항하며 치열하게 활동했던 현장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 동포들이 겪은 4대 비극으로 신한촌 참변, 자유시 참변,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사할린 동포 강제징용을 꼽는데 볼셰비키 당원 중심의 이르쿠츠크파와 민족주의 계열 사회주의자들의 상하이파 두 세력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가 이르쿠츠크파가 러시아 혁명군(적군)과 함께 상하이파를 공격해 2천950명이 숨지고 행방불명됐다"고 덧붙였다.

탐사단원들은 28일 국제공산주의조직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은 이르쿠츠크파가 1921년 5월 고려공산당 창당을 선언한 밤필로프극장과 이르쿠츠크에 서구 문화를 이식하는 계기가 된 데카브리스트 혁명박물관 등을 답사한다.

이어 이르쿠츠크에서 버스로 40분가량 걸리는 리스트비얀카로 이동해 체르스키전망대에서 아리랑 평화문화제를 개최한 뒤 이날 밤 다시 시베리아횡단열차에 탑승해 카자흐스탄으로 향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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