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학원생에게 사적 심부름은 물론 폭언과 욕설,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한 혐의를 받는 전(前) 서울대 사회학과장 A 교수 보도가 나간 뒤, 지금까지도 기자에게 A 교수에 대한 추가 제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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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권센터에 조사된 A 교수의 ‘갑질’은 이미 충분히 다양합니다. A 교수는 공부를 하겠다고 대학원에 온 학생에게 우유와 오렌지 주스 수거, 냉장고 청소, 환기 및 제습제 교체, 벽에 핀 곰팡이 제거, 세탁물 맡기고 찾아오기, 자동차 정기점검, 내비게이션 업데이트, 가스정기점검, 국세청 업무 등 셀 수 없는 잡일을 시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랄’, ‘미친년’, ‘육갑을 떤다’ 등의 폭언을 했다는 학생들의 진술도 나왔습니다. A 교수는 성적 의도가 없었다고 하지만, 학생들이 불쾌하게 느낀 신체접촉이 있었다는 증언도 인권센터 조사에서 잇따랐습니다. 한 대학원생은 A 교수의 수많은 갑질 혐의에 대해 ‘갑질의 그랜드슬램’ 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 갑질 교수의 카톡 상태 메시지는 “또 한 학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 측에 A 교수에 대한 정직 3개월 처분을 권고했습니다. 그간의 사례들을 보면 학교가 여는 교원징계위원회는 인권센터의 권고보다 높은 수준의 징계를 내리지 않아왔습니다. 때문에 A 교수는 아무리 늦어도 3개월 뒤에는 다시 강단으로 돌아와 자신이 ‘갑질’을 했던 학생들과 마주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A 교수의 카카오톡 상태메시지가 학생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또 한 번 공분을 샀습니다. 학생들의 공분을 산 교수의 카톡 상태 메시지는 바로 “또 한 학기 시작했습니다”였습니다. 이에 대해 한 대학원생은 “최소한의 사과 표시도 없이 올린 ‘한 학기 시작했다’는 상태메시지는 ‘I will be back'과 같이 느껴져 섬뜩하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 판박이 같은 교수 징계 ‘정직 3개월’…문제는 낡은 징계 규정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올해 초 만났던 인천대학교의 한 학부생이 생각났습니다. 그 학생 또한 연구비를 교수에게 횡령당하고 용기를 내 경찰 조사에 응했지만, 교수는 고작 정직 3개월 처분만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황당한 상황을 겪어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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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학 교수들의 다양한 갑질과 비위는 계속되는데도 징계는 ‘정직 3개월’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현행 교수 징계 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 국립대 교수는 교육공무원으로서 교육공무원 징계 규정에 따르며, 사립대 교수는 교육공무원법 징계 규정을 준용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징계 규정을 적용받습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다수 대학교수들의 ‘중징계’는 파면과 해임, 그리고 최고 3개월까지인 정직이 전부입니다.
때문에 구성원 대부분이 교원과 학교 관계자들인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 징계위원회에서는 부담스러운 파면과 해임 처분 대신, 1~3개월 정도의 정직 처분만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작해야 3개월 뒤면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 피해 학생들의 가슴은 멍이 들지만, 학교 측은 ‘정직은 3개월이 최고 수위고, 이것도 중징계에 해당한다’는 변명을 내놓기 일쑤입니다.
가해자-피해자 간 분리, 피해자 심리 치료 등에도 3개월은 턱없이 짧은 기간입니다. 하지만 현행 교수 징계 제도에서는 '해임을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되면 교수는 길어야 3개월 뒤면 학교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 학생은 정학 12개월, 9개월, 6개월…서로 다른 징계 ‘이중잣대’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에는 시흥캠퍼스 반대를 위해 행정관 점거농성을 벌이던 서울대 학생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았습니다. 학생회 간부 8명에게는 무기정학이, 참여 학생 4명에게는 각각 정학 12개월과 9개월, 6개월(2명)의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갑질 교수와 점거 농성은 사안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징계 수위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에게 적용되는 징계 제도에 비춰봤을 때에도 우리나라 교수들에게 적용되는 징계 수위는 너무나도 가볍다는 점입니다. 현행 제도상 갑질과 횡령을 해도 교수에게 내릴 수 있는 정직 개월 수는 제도적으로 3개월이 최대지만, 학생들의 정학 개월 수는 12개월, 9개월 6개월 등 수위도 높고 세분화 돼 있습니다.
강남대 인분교수, 서울대 스캔노예, 그리고 전국 여러 대학의 횡령, 성추행 교수 등 대학생보다는 대학 교수들의 비위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현행 교수 징계 제도의 적정성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 배우는 단계에 있는 학생들에겐 3개월~1년까지의 정학을 단계별로 내리면서, 큰 권한과 책임이 있는 교수의 정직은 길어야 3개월인 현재 대학 사회의 처벌 규정은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 교수의 ‘양심’이 아닌 ‘제도’로 보장돼야 할 대학원생 인권
지난해 서울대 인권센터가 소속 대학원생 1222명을 조사한 결과, 33.8%가 폭언과 욕설을, 14.6%가 집단 따돌림과 배제를, 그리고 3.9%는 기합과 구타를 받았다고 응답했습니다. 특정 성에 대한 비하 발언을 당한 학생은 21.2%, 회식 자리에서 성차별을 당한 학생 11.5%,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경험한 학생은 5.7%에 이르렀습니다.
또 연구와는 무관한 교수의 개인적 업무 수행을 지시받은 경우 14.7%, 연구비 관리 등의 과정에서 비윤리적 행위를 지시받은 경우는 20.8%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상당수 대학원생들은 교수로부터 다양하고 중복된 인권 침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학생들 중 43%는 자신이 했던 대응으로 다음 항목에 체크했습니다.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교수가 학위를 안 주겠다고 협박하면 대학원생은 저항할 방법이 없다. 대학원생도 인간 대접을 해달라” 지난 13일 오전 서울대 행정관 앞에 모인 서울대 대학원생 인권단체모임 회원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지만 ‘인간 대접을 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하는 자리에서도 많은 대학원생들은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를 사용해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갑질을 당해도 3개월이 지나면 가해자를 마주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2017년 대한민국 대학원생들은 ‘인간 대접해 달라’는 말도 얼굴을 가린 채 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이번에 갑질 논란이 불거진 A 교수가 소속된 서울대 사회학과는 피해 학생들과의 지속적인 논의는 물론, 학부생까지 참여하는 간담회를 열어 문제 회복에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현행 징계제도 하에서 이번 가을 A교수의 '또 한 학기가 새로 시작되는 것'은 막을 수 없어 보입니다.
A 교수와 소속 대학원생들의 이번 학기는 다양한 폭언과 사적 심부름 지시로 채워졌던 이전의 학기들과는 조금 다른 학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대학원생들의 용기로 촉발된 교수 비위 고발이 교수 징계 제도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취재와 기사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대학원생들의 인권이 교수의 '양심'이 아닌, 제도를 통해 보장받는 날이 올 때 기자들이 '갑질 교수' 기사를 쓰는 빈도도 줄어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