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30년 만에 고문 불법화…구멍 '숭숭' 비판도


이탈리아가 약 30년 만에 고문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인권단체 등은 해당 법안이 수정 작업을 거치며 상당수 고문 행위가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도록 손질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6일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이탈리아 하원은 5일 고문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98표, 반대 35표, 기권 104표로 통과시켰다.

일반인에 의한 고문 행위에 대해 징역 4∼10년, 고문 주체가 경찰관 등 공무 종사자일 경우 징역 5∼12년에 처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안은 이로써 의회에 제출된 지 4년 여 만에 최종 승인됐다.

이탈리아는 1984년 채택된 유엔 고문방지협약을 1988년 비준했으나 그동안 고문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사법 공백을 메우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법안 통과를 주도한 집권 민주당 소속의 도나텔라 페란티 의회 사법위원회 위원장은 "유엔 협약을 비준한 지 거의 30년 만에 이탈리아는 유럽연합과 국제 기구의 지속적 비판의 대상이 된 사법 체계의 심각한 공백을 메울 수 있게 됐다"고 자평했다.

이탈리아는 2001년 북서부 항구 도시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반대 시위대를 경찰이 무자비하게 고문한 사실이 드러나며 고문을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는 사법 시스템을 고치라는 국제적 압력이 증폭되자 관련 법 입안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날 통과된 법안은 잔혹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입증할 수 있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야기해야 고문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입법 과정에서 원안보다 고문의 법적 정의가 대폭 축소돼 실질적으로는 많은 잔혹 행위가 처벌받지 않고 넘어갈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좌파 정당과 제1야당 오성운동은 이런 허점을 비판하며 법안 표결에서 기권했다.

국제엠네스티도 앞서 지난 5월 해당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을 당시 "유엔고문방지협약과 양립할 수 없는 볼품없는 법안"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인권 단체들 역시 해당 법안의 최종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탈리아 군과 경찰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됐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반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 극우정당 북부동맹 등 우파 정당들은 고문을 불법화하는 법안이 군과 경찰의 임무 수행을 어렵게 한다며 법안에 반대해 대조를 이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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