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여성에게 표나게 뒤처지는 남성은 이제 퇴물인가.
전업주부 아내에게 "아이랑 놀기만 하고 좋겠네"라며 빈정대는 남편, 밖에 나가면 시대착오적이고 왜곡된 성 의식으로 주변에 불쾌감만 안기는 남편은 '개저씨'일 뿐인가.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남성이라면 적잖이 불편할 책들이 나란히 나왔다.
남편들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제목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북폴리오)는 은유나 망상이 아니다.
일본 저널리스트 고바야시 미키(小林美希)가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는 아내 14명을 인터뷰했다.
한때 일본의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남편'의 연관검색어로 '죽었으면 좋겠다'가 떠 화제가 됐다.
책에 등장하는 한 여성은 남편의 발소리만 들어도 살의를 느낄 정도라고 고백한다.
아내들은 남편 칫솔로 화장실을 청소하고 칫솔통에 꽂아두며 복수하거나, 남편의 유골을 지하철 안에 내버려두고 오는 상상을 한다.
남편을 향한 아내들의 증오는 대개 독박 육아·가사에서 비롯된다.
"나만큼만 벌어 오면 집안일 할게"라며 거드름 피우는 남편, 아내가 임신 중인데도 늘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는 아내에게 "자궁을 들어내면 여자가 아니겠네?"라며 막말을 내뱉는 남편.
사소해 보이거나 남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불만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문제들을 등한시하며 살다가 정년퇴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아내의 원한이 복수의 형태로 둔갑하여 남편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남편이 죽기를 바라며 함께 살 바에야 이혼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의 재취업 일자리는 저연봉 비정규직이 대부분이어서 혼자 아이를 키우기는 버겁다.
저자는 여성들의 분노를 통해 여성노동의 현실과 성역할에 대한 남자들의 편견을 꼬집는다.
아내에게 살해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의 비위를 맞추며 대접하고 보좌하는 남성들의 모임인 데이슈간파쿠(亭主?白)협회의 아마노 슈이치 회장은 '남편의 10등급'을 제시하며 등급을 높이려고 노력하면 살해당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초단은 결혼 후 3년이 지나서도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 2단은 집안일을 잘 거 드는 사람이다.
'사랑해'라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하는 남편이 10단이라고 한다.
박재영 옮김. 272쪽. 1만3천원.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모던아카이브)는 2013년 11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젠더를 주제로 열린 토론을 정리한 책이다.
미국과 영국의 페미니스트 4명이 '남자는 퇴물인가'를 놓고 2대2로 맞붙는다.
토론은 사회·경제적으로 남성의 성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토론에는 풍자와 냉소가 가득하다.
'남자의 종말'이라는 책을 쓴 해나 로진은 남자가 쓸모없는 퇴물이라는 점을 증명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남자를 살려두지 않고서 정자만 채취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남성들의 평균소득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반면, 여성의 소득은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 국가에서 대학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인데다 남성이 주로 돈을 버는 전통적 가정도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그는 평범한 여대생의 말을 전한다.
"남자는요, 이 시대의 걸리적거리는 족쇄일 뿐이에요." '남자가 꼭 필요한가'의 저자 모린 다우드도 같은 편에 선다.
"이제 여자들에게 필요한 건 냉동실 속 체리 맛 보드카 옆에 놓인 냉동 정자 몇 마리뿐이에요. 그 정도면 준비가 끝납니다." 커밀 팔리아와 케이틀린 모란은 반대편이다.
굳이 남자를 퇴물이라고 말하면서까지 그동안 당한 일을 되갚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남자들이 그동안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해온 사실도 인정한다.
기존의 가사와 육아에, 경제·정치까지 전부 차지한다면 여성이 과연 이기는 걸까.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여자가 해야 한다는 이야기잖아요!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 얼마 못 가 지쳐 나가떨어질 게 뻔해요." 토론은 캐나다 오리아재단이 해마다 두 차례 여는 '멍크 디베이트'의 하나로 진행됐다.
토론 전 투표에서 청중의 82%가 '남자는 퇴물'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토론 이후 재투표에서는 같은 대답이 56%로 줄었다.
노지양 옮김. 200쪽. 1만3천500원.
(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