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통조림 인생"…'퇴로' 없는 쉼터 청소년들


"우리는 통조림 인생 같아요. 유통기한이 있는 통조림처럼 기한이 되면 한 쉼터에서는 나가야 하니까요." 가출하거나 집에서 내쫓겨 쉼터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청소년들의 얘기입니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위한 중장기쉼터와 사회적 보호장치가 부족하다 보니 나온 자포자기성 푸념입니다.

가출청소년들이 범죄에 빠질 가능성을 예방하고 삶의 정상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더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북부지역에 있는 청소년쉼터는 모두 7곳에 불과하며 시설별 정원 역시 10∼15명에 그칩니다.

지역별로는 의정부 3개소, 고양 2개소, 남양주 1개소, 구리 1개소 등이다.

나머지 6개 시·군에는 청소년쉼터가 아예 없습니다.

이마저도 쉼터가 남녀와 일시·단기·중장기로 나뉘어 있는 것을 고려하면, 집 나온 청소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단기는 3∼9개월, 중장기는 최대 3년 동안 머무를 수 있습니다.

특히 남자 청소년을 위한 중장기쉼터는 경기북부지역에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쉼돌이'와 '쉼순이'가 양성됩니다.

단기간 쉼터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청소년들을 가리키는 은어입니다.

이런 떠돌이 생활을 5∼6년까지 하는 청소년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돌아갈 온전한 가정이라도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쉼터에 온 한 10대 청소년은 술을 마시면 자신을 험하게 대하는 어머니를 피해 집에서 나왔습니다.

입소하기 전 절도죄를 저질러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남의 지갑에 손을 댔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형편이 어려워지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건을 훔치라고 절도를 사주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병모 의정부시남자단기청소년쉼터 소장은 "쉼터에 온 청소년의 60%는 집에 절대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학대를 당하거나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큰 청소년들로, 이 아이들은 '전쟁'에 나왔지만 '퇴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장은 이어서 "보호 기간이 끝나고 중장기쉼터가 없어 보육시설로 아이들을 인계해주려고 했었는데 시설 2곳에서 거부당했었다"고 전했습니다.

쉼터 관계자들은 "쉼터에 머무는 청소년들은 부모와의 단순한 갈등 수준이 아니라 '살기 위해'집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변경애 의정부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 소장은 "아버지는 집을 나가 노숙하고, 동남아 출신의 어머니는 고국으로 돌아가 집에 남겨진 10대 자매가 입소한 적 있었다"면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와서 아이들을 데려왔는데, 9개월의 보호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아버지는 아이들을 다시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됐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경력 15년의 변 소장은 "쉼터에 온 청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고 범죄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출발은 '가정의 해체'"라면서 "아이들은 사실 어른들의 학대·성폭력·차별 등을 겪은 피해자"라고 덧붙였습니다.

여자청소년의 경우 입소 청소년들과의 갈등 등을 이유로 쉼터를 전전하는 사이에 성매매 등 범죄의 유혹에도 쉽게 노출됩니다.

2015년 서울시가 이화여대와 한국여성연구원과 공동으로 수도권지역 여자가출청소년 2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8.3%가 성매매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처음으로 성매매를 경험한 나이는 평균 14.9세였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중장기쉼터와 자립생활관을 확충하는 등 보다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장기쉼터는 가출청소년들의 수요에도 학교와 일자리가 주로 분포하는 도심에는 거의 없어서 오히려 이용률이 낮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수요 분석에 따른 재배치와 확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자립생활관은 19세 이상 24세 이하의 '후기 청소년'을 입소 대상으로 하는 시설입니다.

백혜정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출청소년들이 스무살이 넘어가면서 중장기쉼터에서도 잘 안 받아주는데, 이들이 거리로 내몰리면 바로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범죄에 빠지는 수가 있다"며 "성인으로의 자립을 도와주는 시설이 늘어나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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