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흔들리는 '국민연금'…이사장 공백에 운용인력 대거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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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국민연금공단이 창립된 지 30주년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3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와 공단의 미래 30년을 재설계해야 할 시기에 공단은 되레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의 문형표 이사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과 관련해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직권남용 혐의로 지난해 12월27일 긴급체포 된 이래 CEO 공백이 50일 넘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 이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연금 전문가입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한 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재정복지 분야를 주로 담당했습니다. 2007년에는 한국사회보장학회장을 역임했고, 2013년 12월 복지부 장관에 발탁되기 전에는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냈습니다. KDI재직 시절 ‘연금개혁에 관한 연구: 사각지대 완화를 위한 보험료 지원 방안’을 출간해 저소득계층의 노후보장을 위해 연금 보험료를 매칭 지원하자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이사장 재임시절 문 이사장과 오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지만 그의 연금개혁에 대한 의지와 애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성품도 온화하고 학자다운 인상을 풍겼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금개혁 전문가, 비록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이사장 자리에 올라 온갖 특혜, 구설수에 올랐지만 그는 장관보다는 오히려 이사장직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 이사장은 메르스 사태를 책임지지 못한 비난 보다 지금 더 혹독한 비난에 휩싸였습니다. 구속기소 이후 장기간 공석에도 불구하고 이사장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는 겁니다.

문 이사장이 구속수감 되면서 현재 공단은 기획이사가 대행체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국민연금 집행이나 기금운용에 있어서 업무 공백이나 차질은 없다고 말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상황은 다릅니다. 당장 이번 주(25~28일)에 기금운용본부가 전주 이전을 앞두고 기금을 운용해야할 전문 인력들의 이탈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전주 이전을 전후로 20명 안팎의 운용인력이 기금운용본부를 그만두거나 그만둘 예정이고, 지난해 떠난 인력까지 합하면 1년 만에 50명 가량 줄어들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실장급 간부의 기금운용 정보 외부 유출이 자체 감사로 드러나면서 도덕적 해이 문제까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국민 노후 자금인 550조원을 굴리는 운용인력이 대거 이탈하면서 기금 운용에 비상이 걸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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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관계자는 “문 이사장이 1월1일자 인사까지 마치고 가서 인사, 채용에는 당장 문제가 없지만, 7월1일 전까지 이사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하반기 내부 인사가 늦어지는 등 차질이 예상된다”며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CEO의 공백이 커질수록 공단의 업무 차질은 물론 국민의 노후 자금인 기금운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문 이사장은 지금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관여하지 않았고 합병 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문 이사장의 재판에 공단에서 변호사를 지원하려고 검토했지만, 이사장 재직시절이 아닌 장관재직 시설 발생한 일이라 문 이사장은 개인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에 임하고 있습니다.

문 이사장이 아무리 개인적으로 억울하다고 하더라도 직권남용과 위증죄로 구속 기소된 상황에서 이사장직을 고수하는 건 옳지 못합니다. 550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국민의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수장으로서 결단을 조속히 내려야 합니다. 참여연대는 지난 14일 문 이사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공문을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에 발송했습니다. 공문에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임원이 직무에 따른 의무를 위반한 때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공단에 손실이 생기게 한 때는 임면권자가 해임할 수 있으며 문 이사장은 조사와 구속으로 인하여 직무에 따른 임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으므로 해임사유에 해당한다”며 복지부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즉각 해임 건의를 해야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복지부도 이번 사태를 수수방관한다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지적이 잇따르자 오는 22일 문 이사장을 특별면회해 자진 사퇴를  권고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창사 30주년 맞는 국민연금공단이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를 생각해보면 문제는 명확합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낙하산으로 내려왔고, 독립이 보장돼야할 기금운용에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공단 이사장은 국민연금제도 발전과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금 개혁, 조직 관리에 적임자를 찾아 배치하고, 기금운용본부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독립적인 운용을 보장해야 합니다. 기금운용본부장도 권력의 실세나 측근이 아닌 운용 능력으로 공정하게 뽑아야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기금운용본부에도 히딩크 같은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550조원의 기금 운용 실적에 따라 국민의 노후 수준이 달라집니다.  매달 내야할 보험료와 받는 보험금 수령액이 달라집니다.  국민연금공단 창사 30주년 맞는 해에 공단과 복지부는 뼈를 깎는 자성과 환골탈태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기금 고갈과 장기불황에 따른 기금운용의 수익률 저하는 앞으로 미래 세대에게 큰 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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