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대법원 "성폭행 피해자 진술, 공범처럼 입증 요구 말라"


인도에서 법원이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에게 진술을 입증할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23일 일간 타임스오브인디아에 따르면 인도 대법원은 2009년 9살난 여조카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고등법원 판결을 깨고 징역 12년을 선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는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진술을 중심으로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성폭행 범죄에 대한 단호한 단죄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재판부는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의 증언은 가장 중요하고, 이 진술만으로도 피고인은 유죄가 될 수 있다"면서 "성폭행 피해자는 공범이 아닌 만큼 그의 진술은 다른 입증 없이도 그 자체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성폭행 피해자의 진술에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상처에 모욕을 더하는 것"이라며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는 지극히 예외적인 때에만 법원이 피해자에게 자신의 진술을 입증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 부모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2012년에야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여전히 근친 간 성폭행은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운 금기로 간주된다"면서 "친척이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근친상간의 낙인 때문에 다른 경우보다 경찰에 신고하기가 어렵고 대개 아예 신고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번 사건 2심을 맡은 히마찰 프라데시 주 고등법원은 피해자와 피해자 모친의 진술이 부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고 사건이 벌어진 뒤 한참 뒤 신고가 된 점 등을 들어 피해자의 성폭행 피해 진술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인도에서는 2012년 말 수도 뉴델리 시내버스 안에서 여대생이 집단 성폭행당해 사망한 사건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뒤 성폭행 근절이 국가적 과제로 대두하면서 법원에 성폭행 전담 신속재판부가 설치되고 성폭행 처벌 수위가 높아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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