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유적서 가야·신라 토기 440점 출토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 뉴스

금관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삼국시대 가야와 신라의 토기가 다량으로 나왔습니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봉황동 유적 북동쪽 평탄면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굽다리접시와 그릇 받침대, 독, 사발, 시루 등 토기 440여 점을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

또 굽은 옥과 유리구슬 등 장신구, 토우와 가락바퀴, 뼈로 만든 손칼 손잡이, 사슴·돼지·고래·상어 등 포유류와 어류의 뼈도 발견됐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문화층이 확인됐고 구덩이와 주거의 흔적도 드러났습니다.

다만 왕궁터로 판단할 수 있는 대형 건물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국립가야문화재 연구소 관계자는 "전체 조사 면적 5천㎡ 중 30% 정도만 발굴이 이뤄진 상황이어서 대형 건물터의 유무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 "내년이면 전체 규모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가야 토기와 신라 토기가 혼재돼 나타나고 수레바퀴형 토기와 장신구 같은 권위 있는 계층이 사용하던 유물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봉황동 유적이 금관가야의 주요 생활 터전이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1907년부터 60여 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돼 패총(조개무지)와 토성 등이 발견됐지만 금관가야의 왕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유물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이곳이 금관가야의 도성이었다는 내용이 없지만, 1899년 발행된 '김해군읍지' 고적조에는 "수로왕궁지는 지금의 (김해)부 내에 있다고 전해지며, 고궁지는 서문 밖 호현리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내년 3월쯤 발굴조사를 재개할 예정입니다.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