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의 역설…쌀값 20% 폭락, 시름 깊어가는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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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 농사짓고 눈물 나는 심정, 아시겠어요?"

충북 보은군 탄부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문식씨는 요즘 유례없는 대풍으로 창고를 가득히 채운 벼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예년 같으면 수확의 기쁨에 취해 풍요로운 추석을 준비할 때지만, 올해는 바닥 모르고 추락하는 쌀값 때문에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철 흘린 비지땀이 억울할 지경이다.

그가 농사지은 벼는 조생종인 '조평'이다.

남들보다 일찍 볍씨를 뿌리고, 정성을 들인 덕에 이 지역서 가장 이른 지난달 30일 수확을 시작했다.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에도 그의 벼는 풍작을 이뤘다.

1만2천㎡의 논에서 거둬들인 벼가 40㎏짜리 270포대나 된다.

김씨는 "작년에는 한 마지기(200평)에 5포대씩 나왔는데, 올해는 7포대로 늘었다"며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 같은 풍작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 햅쌀 80㎏ 1포대 16만원→12만원…"더 떨어진다" 헐값 출하 그는 수확한 벼를 곧바로 도정해 서울과 대전의 도매상에 넘기는데, 요즘 햅쌀 도매가격은 80㎏ 1포대에 12만원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추석 전 16만원 하던 것에 비하면 20% 넘는 폭락이다.

조생종 햅쌀값은 대개 추석이 지나면 더 떨어진다.

이 때문에 그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쌀을 처분하는 중이다.

'미소진 쌀'을 생산하는 충북 충주의 농협 공동사업장도 사정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사업장은 지난달 인근 농민 10명으로부터 120t의 조생종 '금영' 벼를 사들였다.

40㎏에 5만2천원씩 선급금을 쳐주고, 정부 수매가격이 정해지면 차액을 정산해주는 조건의 계약재배였다.

그러나 올해 산 '미소진 쌀'의 시장가격은 10㎏에 2만5천500원까지 떨어졌다.

벼를 도정해 팔수록 손해를 보게 된 셈이다.

농협 공동사업장 관계자는 "산지 벼값(40㎏)이 4만원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햅쌀도 10㎏에 2만원 밑으로 내려앉았다"며 "그나마 우리는 충주시청 등이 판매를 도와줘 손해를 줄이게 됐다"고 말했다.

산지 쌀값이 곤두박질하면서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추석이 코 앞이지만, 얼굴에는 가을걷이의 풍요로움이 사라진 지 오래다.

◇ 2년 연속 풍작에다 재고 산더미…가격 약세 지속될 듯 쌀값 폭락은 연이은 풍작에 따른 것이다.

벼를 수확한 농민들은 작년보다 수확량이 10∼20% 늘었다고 말한다.

보은의 김씨처럼 40% 증가한 사례도 있다.

정부는 올해 쌀 생산량이 사상 최대 풍작을 이룬 작년 수준을 웃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조가 풍부하고 병해충 발생이 적은 데다, 홍수·태풍까지 비켜갔기 때문이다.

이는 작황조사에도 그대로 나타나 지난달 31일 충북지역 벼의 포기당 이삭 수는 19.1개로 지난해 18개와 평년 16.5개에 비해 1.1개와 2.6개 많았다.

이삭당 알 수도 93.4개로 전년 86.8개, 평년 91개를 웃돌았다.

지난해 전국서 생산된 쌀은 432만7천t이다.

올해 벼 재배면적이 77만8천734㏊로 작년(79만9천344㏊)보다 줄었지만, 이번 달 기상상황에 따라 지난해 수준에 육박하는 풍작이 기대된다.

농식품부 식량산업과 송재원 사무관은 "이달 15일 전국적인 작황 조사가 이뤄져야 쌀 생산량을 예상할 수 있는데, 지금봐서는 작년과 맞먹는 풍작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2년 연속 유례없는 풍작이 기대되는 가운데, 쌀 재고까지 산더미처럼 쌓이면서 가격은 끝을 모르고 하락하는 중이다.

지난 6월 정부의 쌀 재고량은 175만t으로 지난해 같은 시점(133만t)보다 42만t 많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 재고량(80만t)을 2배 이상 웃돈다.

민간연구단체인 GS&J가 조사한 지난 5일 기준 전국 쌀값은 80㎏당 13만7천152원으로 작년 같은 날 15만9천972원보다 14.3% 내려앉았다.

이 기관은 햅쌀 출하를 앞두고 전국의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재고를 시장에 밀어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 "쌀값 보장하라"…농민들, 전량 수매·최저가격 보장 요구 쌀값 폭락에 따른 농민 반발도 거세다.

전국쌀생산협회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쌀값 폭락 대책을 촉구했고, 충청과 경기지역 농민단체도 12일 정부 세종청사 앞에 모여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집회를 했다.

충북 옥천지역 농민 100여명은 지난 10일 옥천읍 시가지에서 벼 전량 수매와 최저가격 보장 등을 요구하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 자리서 농민들은 "정부의 대책 없는 쌀 수입과 정책 실패가 쌀값 폭락을 불렀다"며 쌀 수입 중단과 재고 쌀 처분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이달 말 중만생종 벼 수확이 시작되면 농민 반발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일부 미곡종합처리장에서는 벌써부터 수매가격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시중 쌀값 하락분만큼 수매가격을 낮추겠다는 미곡종합처리장 측과 생산원가 보장을 요구하는 농민이 대립하고 있다.

전국농민회 충북도연맹 박기수 의장은 "쌀 정책에 실패한 정부가 모든 고통을 농민에게 떠넘기려 한다"며 "올해 생산된 쌀을 전량수매해 농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쌀값 폭락은 정부에서 해마다 40만t씩을 수입해 재고로 남기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모든 쌀 수입을 즉각 중단하고,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값 안정대책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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