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진해운 사태' 뒷북이라도 잘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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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수출 뉴스를 전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화면이 있다. 컨테이너를 가득 싣고 항해하는 한진해운 선박들은 말 그대로 수출 한국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우리 수출의 첨병이던 한진해운이 지금은 부실기업의 낙인이 찍힌 채 글로벌 물류대란의 주범이 되고 있다. 항구에 들어온 선박들은 압류되고, 입항마저 거부당한 선박들은 바다 위를 떠도는 처지다. 물건을 보내지도 받지도 못하면서 수출업체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수출 한국의 대명사가 오히려 우리 경제의 신인도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국내 1위, 세계 7위의 글로벌 해운사를 부실로 몰고 간 대주주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대주주가 책임과 의무를 다 하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구조조정 원칙에 따랐다는 정부의 법정관리 결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경제적 파장을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건 정책당국의 몫이었다. 이렇게 글로벌 물류대란 상황으로까지 번지게 한 데는 정부의 정책 대응에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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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물동량 문제, 해운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등 금융·해운 산업 측면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검토했다."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넘기면서 정부가 밝혔던 이런 공언(公言)은 이미 공언(空言)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한진해운 측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아서 대비에 한계가 있었다는 정부의 뒤늦은 해명은 정책당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오히려 실망감만 더해줄 뿐이다. 부랴부랴 관계부처 합동 TF를 만들며 대책마련에 나선 정부의 대응이 뒷북 대응이라며 도마에 오르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의 뒷북 대응을 나무라기만 할 때가 아니다. 어차피 선제적 대응이 물 건너 간 바에야 파장을 줄이는 수습책이라도 잘 꾸려가야 하는 상황의 시급성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가 IMF를 맞았지만 그래도 뒷북 대응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했고 내수를 키우려다 맞은 카드 사태도 뒷북대응으로 수습이 됐었다. 뒷북이라도 잘 쳐서 수습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교훈들이다.

그런데 뒷북은 문제가 이미 드러난 상황인 만큼 선제적 대응과는 해결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응이 신속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지금 정부의 대응을 보면 뒷북마저 제대로 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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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번진 한진해운 사태의 가장 시급한 대응 과제는 압류되거나 바다를 떠돌고 있는 화물들의 처리 문제다. 한진해운 소속 선박들의 묶인 발을 풀어줘야 하는 것이다. 선박 압류를 막기 위해 해외 항만 상대국들 법원에 압류금지명령(Stay Order)을 신청하고는 있지만 얼마나 호의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결국은 한진해운이 밀린 항만 이용료와 하역비, 용선료 등을 지급하는 것 외에는 현실적인 해법이 없는 것이다. 밀린 대금 6천억 원 가운데 2천억~3천억 원 정도가 있어야 당장 하역을 위해 급한 불을 끌 수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진해운에게는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채권단과 대주주인 한진그룹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지만 채권단은 다시 대주주의 책임을 묻고 있고 대주주는 여력이 없다고 발을 빼고 있다. 법정관리 결정 이전의 힘겨루기가 다시 반복되는 상황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글로벌 물류 대란이 아니었던가? 정부와 한진의 핑퐁게임에 애꿏은 화주 업체들이 속은 더 타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수출입물량의 처리 문제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 최대의 쇼핑성수기인 블랙프라이데이와 성탄절을 대비한 우리 기업들의 수출 전략에도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에는 선적을 해야 하는데 껑충 뛰어오른 운임과 대체선박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눈에 띄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진해운이 속한 해운동맹 선사들에 수송 지원을 요청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이미 해운동맹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현대상선 선박을 대체 투입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루하루 상황이 더 급박해지지만 컨트롤타워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합동TF 기재부, 금융위, 해수부, 산자부 등 관계부처가 모이곤 있지만 조금씩 다른 생각들이 부처별 브리핑에서 나타나고 있다.

제대로 된 뒷북 대응마저 어려워 보이는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은 골든타임의 시계는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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