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내가 필요하면 부른다" 이정현식 언론관?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 뉴스

지난 1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전에 없었던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친박계 핵심들이 당을 장악한 뒤 지도부 사이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터라 더욱 관심을 끌었습니다. 발단은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탈당한 인사 10명의 재입당을 허용할지 여부였습니다. 

최고위원회의 비공개 부분에서 친박계 이장우 최고위원은 "탈당한 지 5개월 밖에 안됐는데 벌써 복당을 시켜주면 어떻게 하느냐", "탈당한 사람들의 복당 기준을 객관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공천에 불복해 탈당했다면 '최소 2년간 복당 금지'와 같은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정현 대표는 "그 동안 해왔던 것이니까 오늘은 웬만하면 이대로 하자"고 진화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은 "그렇게 대충 얼렁뚱땅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뭐 이런 지도부 회의가 다 있느냐"면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도 "최고위원들이 그냥 승인하는 거수기냐"면서 "문제 제기가 있으니 좀 더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고 가세했고 이에 이 대표는 "이렇게 다들 대표를 무력화시켜도 되는 것이냐"면서 언성을 높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흥분했던 탓일까요? 이 대표는 회의 후 평소와 달리 기자들에게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 “내가 필요하면 부르고 그래야지”

이정현 대표가 회의실에서 나오자 통상 그렇듯 회의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현안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이런 식으로 질의응답이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공식 브리핑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시간이 걸리고 또 대변인이 아닌 대표나 최고위원들에게 직접 취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물론 질문을 한다고 해서 당사자들이 늘 답변을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가 하면 원론적인 답변만 할 때도 있습니다. 답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기자 입장에서는 일단 따라붙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조금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필요에 따라 이를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어쨌든 그날 이정현 대표는 전자 쪽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기자들이 모여들자 “매번 (회의실에서) 나올 때 이렇게 해 가지고 말이야, (나 따라서) 걸어가는 거 그런 거 하지마”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그럼 어디에서 물어보면 되냐는 질문에 “아니, 그러니까 내가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대변인이 브리핑 하고 내가 필요하면 (기자들) 부르고 그래야지 자꾸 길거리에서 잡아가지고 자꾸 그 이상한 모습 찍어 가지고…”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밖에서 자신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을 외면하기가 그랬는지 “그러니까 어쨌든 간에 뭘 물어 보려고”라고 한마디 덧붙였다고 합니다. 재입당 관련 질문이 나오자 이 대표는 멈칫했고 박명재 사무총장이 대신 나서 자신이 알아서 답변하겠다는 식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얼핏 보기에 별 무리 없는 기자와 당대표 간 통상적인 취재와 답변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내가 필요하면 (기자들) 부르고 그래야지”라는 이 대표의 한 마디였습니다. 말꼬리를 잡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이 대표의 인식에 일말의 우려가 남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 이 대표에게 ‘언론’이란?

기자를 처음 시작하면서 들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기자란 누구에게나 물어볼 수 있는 직업’이었습니다. 물론 ‘대답을 들을 수 있는’이 아니라 ‘물어볼 수 있는’ 입니다. 답을 얻어내는 것은 기자 역량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솔직히 요즘 인터뷰 가운데 가장 힘든 게 일반 시민 인터뷰입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 방송기자이다 보니 카메라 앞에 누군가를 세워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우선 자기 얼굴이 나가는 걸 싫어하는 분들이 있고 또 갑작스런 질문에 답하기 곤란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뭔가 부담만 있고 득 될 게 없으니 무리도 아닌 셈입니다.

정치인의 경우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대체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활용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의도가 없다 해도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 인터뷰를 적극 활용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자기 부고 기사 빼고는 뭐든 기사 나가는 게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본론으로 돌아가서, 기자가 정치인에게 현안을 묻고 취재하는 건 기자라는 직업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답을 하고 안 하고는 정치인의 권리이지만 묻는 것은 기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공식 브리핑이나 기자회견도 좋지만 필요하다면 현장으로 찾아가는 묻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이 대표의 말처럼 출입처에서 제공하는 정보만 취합해 기사를 내 보낸다면… 글쎄요, 그게 기자 정체성에 맞는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 한마디로 이 대표의 언론관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직하던 시절, 이 대표가 언론을 어떤 식으로 바라봤는지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 터라 이 한 마디가 더욱 크게 들렸는지도 모릅니다.

● 감탄고토(甘呑苦吐) 식 언론 접근법?

뭔가 (좋지 않은 기사가 나갔다든가) 언론 환경이 청와대에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홍보수석실 직원들에게 일체 기자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반대로 뭔가 청와대 차원에서 알리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느냐며 기자들과 만나라고 독촉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언론을 대국민 소통 창구로 인식하기 보다는 정권 홍보의 수단으로 봤던 것 같다는 게 당시 제가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정현 대표는 취임 일성대로 분주히 민생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주요 인사들에게 선물 대신 편지를 보내고 당사 경비, 청소노동자들께 점심을 대접한다고 합니다. 야당에서도 이 대표가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평이 많습니다. 언론에 대한 짧은 한 마디 역시, 한 때 불편한 심기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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