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 숨진 북한 의사가 품었던 남한에서의 꿈


"북한에서 나온 매형은 남한의 직장에서 동료들과 차별을 받는 풍조를 가장 힘들어했습니다." 지난 13일 인천 연수구의 한 빌딩 2층에서 실내 유리창을 닦다가 추락해 숨진 의사 출신 새터민 A(48)씨의 유족들은 생전 A씨가 남한 사회에서 겪은 고충을 이렇게 전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A씨는 포스코가 설립한 건물관리·청소 용역 사회적기업 '송도에스이(SE)'에서 주차관리 주임으로 일했다.

그러나 올해 4월께 구조조정이 이뤄지며 '사원'으로 강등돼 건물청소 업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월 180만 원 받던 임금도 140만 원으로 삭감됐다.

처남 B씨(36·새터민)는 22일 "남한의 다른 동료 직원은 사원직을 유지하거나 주임으로 승진했는데 유독 매형만 이유 없이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며 "유족들이 장례를 미루면서까지 송도에스이측에 불합리한 인사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하던 A씨는 간 질환과 고혈압 등에 시달리는 아내를 치료하고자 2006년 탈북해 남한에 정착했다.

공사장에서 건설근로자로 일하며 아내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해 온 A씨는 2010년 송도에스이에 입사해 의사로 재기할 희망을 품었다.

아내는 지병으로 신체의 절반이 마비되며 거동조차 할 수 없었지만, 북한에서는꿈꿀 수도 없었던 간 이식수술을 받으며 상태가 크게 호전됐다.

A씨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묵묵히 생활하며 북측에 남아 있는 부모와 상봉을 고대했다.

그는 일기장에 '편법이 용납되는 결과주의와 일등주의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싶다', '사람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는 쓸쓸한 이야기도 많이 있지만…원칙을 지켜나가며 사는 그런 삶도 아름답다고 믿고 살아가고 싶다'는 등 새터민의 고충을 고스란히 담았다.

또 '성공이라는 봉우리를 향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 길만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며 그리운 혈육과 상봉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기에…' 등 스스로 용기를 북돋는 글귀를 가득 적어놨다.

A씨 유족들은 송도에스이와 모기업인 포스코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등을 요구하며 장례절차를 미뤄왔으나 사측과 최종 합의가 이뤄지면 22일 발인을 할 예정이다.

처남 B씨는 "누나(A씨의 아내)는 매형이 숨을 거둔 뒤 한때 매형의 일기장에 '이승에서 평안 찾아 편히 쉬기를 바래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지만 건강 상태가 크게 나빠졌다"며 안타까워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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