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잡는 열대야, 농작물에 더 치명적…폭염 피해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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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의 일종인 일소 피해가 발생한 사과(사진=연합뉴스/단양군 농업기술센터 제공)

'일교차가 커서 맛과 향이 좋다',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자라 식감과 저장성이 우수하다' 과일과 채소 주산지의 기후 특성을 보면 일교차란 표현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짐없이 등장한다.

왜 그럴까.

식물은 낮에는 왕성한 광합성 작용으로 당(糖)을 비롯한 영양소를 생산하고, 밤에는 신진대사에 필요한 호흡을 하면서 낮 동안 만든 당을 분해·소비한다.

야간 고온 현상이 계속되면 생존을 위한 호흡 활동이 활발해져 많은 영양소를 에너지로 소진한다.

밤 기온이 높을수록 호흡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비축해둔 영양소 소비가 많아지면서 당도도 떨어지게 된다.

낮에는 일조량이 충분해 광합성을 돕고, 밤에는 온도가 적당히 낮아야 에너지 소비가 줄고 영양소도 쌓아둘 수 있다.

고품질 상품 생산의 비결이다.

식물 생장에 적합한 야간 온도는 15∼18도.

지난달 하순 장마가 물러간 이후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면서 한낮은 물론 새벽까지 고온이 이어지는 요즘 날씨는 농작물에는 최악의 여건이다.

35도를 넘나드는 고온에 시달리다 새벽 최저 기온마저 25도 이상 웃도는 열대야 탓에 숨돌릴 겨를조차 없어 '허약체질'로 바뀌고 만다.

종일 무더위와 싸우며 일하고 밤잠까지 설쳐 맥을 못 추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고온 스트레스나 장애로 열해(熱害)가 발생하고 생리 교란이 일어난다.

당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제 빛깔이 안 날뿐더러 수확량도 감소한다.

가까스로 폭염을 이겨내고 출하된 작물도 색깔이 거무스름해져 상품 가치가 뚝 떨어진다.

과일 일소(日燒)가 폭염 피해의 대표적 증상이다.

강한 햇볕에 오래 노출돼 화상을 입는 것이다.

장마 직후 고온 건조한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면 수분이 증발하는 증산량은 많아지는 반면 뿌리의 흡수 능력은 저하돼 큰 피해가 발생한다.

대표적 사과 산지인 충북 충주와 경북 안동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과수원에서 일소 피해가 속출하는 이유다.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서 3만3천㎡ 규모의 사과 농사를 짓는 문준식(36) 씨 과수원은 지난달 말부터 나무에 따라 4∼8%까지 일소 피해가 발생했다.

이른 추석을 대비해 홍로 같은 조생종 출하 준비를 서둘러 시작한 농가 피해가 더욱 크다.

색깔을 잘 내려고 봉지를 일찍 벗겨내고 잎 솎아내기를 하다 보니 햇볕 노출이 훨씬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일조 피해를 본 열매를 제거하지 않으면 덴 부분이 썩고 병충해가 생겨 삽시간에 다른 열매와 과수로 번져 나간다.

폭염에 지친 작물은 설상가상으로 해충의 공격을 받아 치명적인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봉지를 씌운 채 수확하는 복숭아는 폭염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안심할 순 없다.

'햇사레' 복숭아 생산지인 충북 음성군 최상기 농산물유통팀장은 "더위 피해를 당하면 복숭아가 물러질 수 있고, 열매가 덜 큰 상태에서 빨리 익어버려 생산량도 줄게 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폭염 피해는 과수뿐 아니라 수박·토마토 같은 시설채소와 배추·무, 고추에 이르기까지 작목을 가리지 않는다.

배추와 무에서는 무름병이나 석회·붕소 결핍증이, 고추는 어린 열매가 떨어지는 현상이나 일소 피해가 나타난다.

상추를 비롯해 비롯해 시차를 두고 계속 수확하는 쌈채류의 경우 맨 나중에 따는 끝물 피해가 심하다.

충주시 농업기술센터 안문환 기술보급과장은 "끝물 상추의 경우 지면에서 30㎝ 이상 자라면서 더 높은 온도에 오래 노출되고 기력도 떨어져 폭염에 더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단백질이 풍부해 '밭에서 나는 쇠고기'로 불리는 콩도 폭염이 괴롭긴 마찬가지다.

잎이 말라버리는 위조(萎凋)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갓 달린 꼬투리가 떨어져 나가거나 아예 꼬투리가 생기지 않기도 한다.

요즘 같은 날씨엔 웬만한 작물에서는 어김없이 시듦 현상도 나타난다.

충북 단양군 일부 지역에서는 수수, 율무, 콩 같은 밭작물에서 잎마름 증상을 비롯한 가뭄 피해가 확인됐다.

농작물 폭염 피해를 줄이려면 강한 직사광에 지나치게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하고 토양과 작물의 수분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농촌진흥청은 "땅을 깊이 가는 깊이갈이와 유기물 퇴비 사용으로 뿌리 활성을 높여 수분 흡수가 잘되도록 하고, 물을 자주 주는 게 좋다"며 "일소 피해가 심한 경우 2차 병해 예방을 위해 신속히 제거하고, 낙과나 손상된 과일도 깨끗이 치워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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