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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가루·가스냄새 이젠 지겹다"…조선소 옆 마을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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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옥상과 골목 땅바닥에 자석을 갖다대면 조선소에서 날라온 쇳가루가 착 달라붙어요. 수십년간 쇳가루 날리고, 철판 두드리는 소리, 가스 냄새에 시달렸는데 또 언제까지 버텨냐 하나 싶어 한숨만 나옵니다."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바로 옆 죽곡마을 이주대책위원장인 이규업(64) 씨의 한탄이다.

지난 9일 오후에 만난 이 씨는 마을회관 옥상에서 쓸어담았다며 둥그런 플라스틱병에 가득 담긴 흙먼지를 보여줬다.

여기에 둥그런 자석을 갖다대자 시커먼 먼지가 착착 달라붙었다.

그냥 먼지가 아니라 쇳가루였다.

그는 골목에 나가서는 콘크리트 땅바닥에도 자석을 스윽 문질렀다.

몇번 문지르지도 않았는데 쇳가루가 자석에 묻어나왔다.

"마을과 붙어 있는 조선소 담 넘어 바로 철판 야적장하고 가공공장이 있거든. 철판에 낀 녹을 없애는 작업을 하면 쇳가루가 금방 바람에 날아와" 역한 가스 냄새와 페인트 가루가 바람을 타고 마을로 넘어올 때도 한두번이 아니어서 한여름에도 창문을 제대로 열어놓을 수 없다고 그는 호소했다.

쇠를 '탕 탕' 두드리거나 '윙'하고 갈아내는 소음도 항상 들려온다.

1990년대 말에 진행된 역학조사에서도 조선소로 인한 환경피해가 있음을 인정했다.

경영난으로 STX조선이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감원 대상이 되거나 임금이 깎인 직원과 그 가족들만 어려움을 겪는게 아니다.

STX조선에서 나오는 분진, 소음, 페인트 냄새로 고통받다 내년이면 멀리 떨어진 새 마을로 이사갈 꿈에 부풀었던 지역주민들 바람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원포동 죽곡·수치마을은 STX조선 진해조선소 근처에 있다.

두 마을을 합해 302가구, 주민 수는 400명에 약간 모자란다.

죽곡마을은 특히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조선소 야드와 거의 붙어있다.

자연부락인 죽곡마을이 있던 곳에 1990년대 초 조선소가 들어왔다.

마을 앞 논과 바다가 배를 만드는 곳으로 변했고 갈수록 규모는 커졌다.

조선소가 배를 많이 수주해 가동률이 높아갈수록 고통 수위도 더 높아졌다.

바닷가 바로 옆이라 횟집이 많았던 수치마을은 조선소가 점점 바다쪽으로 확장하자 어촌마을 정취를 잃어갔다.

외지인들 발길이 뜸해지면서 지금은 영업중인 횟집보다 문닫은 횟집이 더 많을 정도로 마을이 쇠퇴했다.

더 이상 못살겠다며 두 마을주민들은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2008년 죽곡·수치마을이 진해국가산단 확장구역에 편입된 것을 계기로 STX조선은 두 마을 주민들을 조선소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주시키기로 했다.

2012년 9월에는 조선소에서 1㎞가량 떨어진 진해구 명동 산 104 일대 13만1천㎡가 이주단지로 결정됐다.

이주단지에 필요한 땅을 사들이고 새 마을을 만드는 공사비 295억원 전액은 STX조선해양이 100% 부담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이주단지 조성공사에 들어가 2017년 말까지 주민들이 입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STX조선이 기업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계획이 어그러졌다.

토지 보상비 68억원으로 땅 1/3 가량만 매입한 상태에서 이주 계획이 멈췄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는 기업의 모든 경영결정은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주계획이 STX조선이 다음달 초 법원에 제출할 회생계획안에 들어갈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직원을 자르고 자산을 몽땅 내다파는 마당에 생산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서 수백억원이 드는 사업은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을을 관통하는 왕복 4차선 진해국가산업단지 진입도로가 올해 4월 새로 나면서 동네가 두동강 났다.

지역주민들과 창원시는 회사가 어렵더라도 그동안 갖은 불편을 참아온 주민들을 위해 이주계획이 획생안에 포함돼야 하고 차질없이 사업이 추진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규업 이주대책위원장은 "STX조선이 어렵다면 창원시가 직접 공영개발을 해서라도 주민들이 새로 살 터전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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