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오폭 희생자 넋 기립니다"…구미 위령탑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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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구미 형곡동 폭격 희생자 위령탑 건립 (사진=구미시 제공/연합뉴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16일 오전 10시께 경북 구미시 형곡동 시무실마을과 사창마을에 미군기가 떴다.

형곡동은 산으로 둘러싸여 전쟁 당시 안전하다고 소문이 나 주민이 피란하지 않았고 낙동강을 건너지 못한 피란민도 섞여 살았다.

8∼9대의 미군기는 갑자기 이 일대를 융단 폭격하고 총을 쏘기 시작했다.

당시 약 130가구가 살던 형곡동 마을은 폭격으로 전체가 파손됐다.

이 폭격으로 130여명이 숨졌다고 주민은 기억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마을 도랑에 핏물이 흐를 정도로 참혹했다고 전했다.

미군 문서에도 미8군이 당일 구미 형곡동을 포함해 B-29 융단 폭격을 준비하라고 명령한 내용이 있다.

미군은 임시수도인 대구 함락을 우려해 적군 전투력과 사기를 꺾고자 인민군 병력이 은신한다고 의심한 칠곡 왜관 인근 민간인 마을을 폭격했다.

그러나 형곡동 희생자 유족은 당시 마을엔 인민군이 없었다고 전했다.

주민 130여명이 숨졌음에도 유족은 수십 년 동안 누구에게 하소연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한을 간직하고 살았다.

이 사건이 밖으로 드러난 것은 1999년 충북 영동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이 불거지면서다.

한국전쟁 당시 오폭이나 학살사건에 관심이 커지자 형곡동 민간인 오폭사건도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주민은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었다.

과거사위원회는 조사를 거쳐 2010년 6월 30일 형곡동 일대에 미군 폭격으로 최소한 29명이 사망했다고 규명했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희생자위령사업을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이후 구미시의원과 주민은 형곡동위령탑건립추진위원회(공동 위원장 손홍섭·박교상)를 만들어 마침내 4일 형곡동 금오산 자락에 1억여원을 들여 위령탑을 세웠다.

유족은 제막식에 앞서 추모제를 열어 희생자 넋을 위로했다.

황등석, 스테인리스스틸 등을 재료로 3×2.4×5m 크기로 위령탑을 만들었다.

'소지(燒紙)를 올리다'란 주제로 소원을 빌기 위해 종이를 불살라서 공중으로 올리는 형태를 띤다.

기단 앞에는 건립 취지문과 사건배경, 뒤쪽에는 48명의 희생자 명단을 새겼다.

추진위는 위령탑을 건립하기까지 기록을 수록한 '1950, 그날! 6·25전쟁 형곡동 폭격 희생자 위령탑 건립사'를 발간했다.

김중권 구미시 부시장은 추모사에서 "억울한 희생자 넋을 기리고 오랜 세월 동안 꿋꿋하게 참고 살아온 유가족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다"며 "비참한 전쟁의 역사와 평화의 소중함을 알려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의 장으로 널리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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