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부정한 청탁과 금품수수를 금지한 이른바 '김영란법'에 대해 28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법 시행시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당장 국내 경기에 미치는 타격이 클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유통업계와 농수축산업계, 골프 등 레저스포츠업계, 호텔이나 외식업계 등이 모두 산업 위축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가뜩이나 국내 경기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앞으로도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 진행되면 내수 업종 위축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위기감은 더욱 크다.
물론 법 취지대로 국내 부패수준이 개선된다면 경제 성장은 물론 국가경쟁력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법 시행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법 시행이 곧바로 부패 청산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다는 점이 불안을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와 경제가 투명해지고 지하경제가 양성화되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면서도 내수 위축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 수출 부진에다 내수 위축…우리 경제 단기 타격 불가피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번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이 당장 우리 경제 전반, 특히 내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이 상한액이 되면서 식당이나 술집, 골프장 등의 업종은 물론 농축수산물과 화훼, 유통업계에까지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농식품부가 최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수협중앙회·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공동 분석한 결과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연간 농축수산물의 선물 수요는 최대 2조3천억원, 음식점 수요는 최대 4조2천억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우리 경제는 양대 축 중 하나인 수출이 지난 6월까지 최장기간인 18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최근 그 여파가 또 다른 축인 내수로 확대되고 있다.
자영업자 수(전년 동월 대비)는 지난 2014년 12월 6천명 감소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을 제외하면 올해 6월까지 1년 반가량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산업·기업 구조조정까지 겹치면서 기업 설비투자가 위축되고 이는 다시 고용 사정 악화와 가계소득 감소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실제 통계청의 1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의 비중을 뜻하는 평균소비성향은 72.1%로 전년 동기 대비 0.3%포인트 하락하면서 1분기 기준으로는 소비성향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소비를 중심으로 한 내수위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이 시행 시 음식업, 골프업, 소비재·유통업(선물) 등이 타격을 입는 등 연간 11조6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김영란법 시행 등에 따른 일시적 소비조정을 하반기 우리 경제 하반기 제약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경제수장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김영란법 시행의 영향에 대해 "한 연구원이 김영란법의 (부정적인) 경제적 효과를 11조원 정도로 봤다"며 "특정 산업에 영향이 집중되고 다른 산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큰 문제"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내부적으로는 김영란법의 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자료가 없다"면서도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4분기에 당장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 법 자체의 모호성이 있어서 민간부문 경제가 지레 위축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부패 사라지면 경제에 긍정적"…자영업 죽는다 지적도 전문가들은 김영란법 때문에 단기적으로 내수에 타격을 입겠지만, 부패가 줄어들면 세원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등 장기적으로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봤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긍정적, 부정적 효과가 모두 있다"면서도 "부패의 경제적 비용을 도외시하고 단기적인 비용만을 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부패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구조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비용이 훨씬 크다"며 "경제적 불확실성은 시간이 지나고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축산농가 등 취약업종을 살리기 위해 부패를 허용해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선물 등을 중심으로 버텨온 업종이 다른 판로를 찾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전 교수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4분기에는 내수 위축 영향이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긍정적, 부정적 효과가 다 있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중장기적으론 경제에 도움이 되는 영향이 더 크다"고 했다.
반면 식당 등 자영업자가 경제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김영란법이 자영업에 타격을 주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법의 취지는 좋지만 모호하고 사탕발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반면에 식당 등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너무도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자영업이 고용의 25%를 차지하는 경제적 배경과 외식과 회식이 식당 영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김영란법 시행으로 회식 등이 줄어들면 한계 상황에 놓인 식당 폐업이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부패 청산으로 추가 경제성장 가능" 다만 이론적으로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사회 전체적인 부패 요인이 줄어들면 국가 경쟁력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다수다.
부패는 공공투자와 관련한 정책결정 과정을 왜곡시키거나 민간투자 활력을 떨어뜨려 경제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제출한 보고서 내용을 보면 한국의 청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만 돼도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1995∼2010년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를 토대로 OECD 국가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과의 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지수가 1% 오를 때 1인당 명목 GDP는 연평균 0.029%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지난해 56점으로 OECD 34개국 평균(67.2점)보다 크게 낮게 나타난 바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의 용역을 받았을 당시 이런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국 청렴도가 OECD 평균 수준만큼 개선되면 2010년 기준 1인당 GDP는 연평균 약 138.5달러, 경제성장률은 0.65%포인트 정도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앞서 한국생산성본부도 2010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와 노동생산성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 부패 정도가 심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009년 미국의 리스크 분석기관 PRS그룹의 'ICRG(International Country Risk Guide)' 지수로 분석해보니 청렴지수가 1.2만큼 개선되면 한국의 국가브랜드 점수가 5.2점, 국가경쟁력 점수가 0.29 각각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패가 개선되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으로, 이번 김영란법이 과연 부패를 개선하고 청렴도를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에 앞서 국회 절차도 있는 만큼 일단은 개정작업 등 동향을 지켜볼 방침"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