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여기가 어디일까요... 제3세계 빈민촌이 아닙니다. 40여년 전 청계천 하류변의 풍경입니다
당시 청계천변에는 판자촌이 즐비했습니다. 집을 지었다기보다는 나무와 슬레이트, 벽돌 등으로 얼기설기 엮어놓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였습니다.
더 심한 데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개미굴'.
비닐과 거적으로 겨우 덮어 놓아 아예 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해 굴이라고 불렸던 모양입니다. 이 곳에서도 사람들은 물길어 밥짓고 채소를 심고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1973년
전기와 상하수도 시설은 언감생심 기대도 할 수 없었던 청계천 판자촌에서는 강가에 나무 판자로 대충 지은 공용화장실에서 용무를 해결했습니다. 판자촌 주민들을 넝마를 줍거나 거리에서 노점을 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노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거리에서 신문을 팔거나 모여서 우산대를 조립해 비오는 날이면 나가서 비닐우산을 팔았습니다.
추위를 피하기도 벅차 보이는 판자집에도 손님이 찾아온 날엔 변변한 외투 하나 못 갖춰입은 아이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사진 찍는 게 마냥 신기했나 봅니다.
이 와중에도 어른들은 아이들을 키웠고 아이들은 자랐습니다. 당시는 아이가 아이를 키우는 시절이었습니다.
# 1975년
청계천 판자촌에도 도시 개발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1975년 청계천변의 판자촌, 개미굴 철거가 시작됐고,
1976년 9월 청계천 판자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청계천은 복개된 뒤 고가도로가 만들어지고 또다시 철거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러나 도시빈민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때 만큼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입니다.
# 청계천변에서 야학과 빈민 운동을 했던 고 제정구 의원과 함께 활동했던 일본인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는 당시 청계천변에서 찍은 사진들을 한국에 기증했습니다. 이 사진들에 해설을 붙여 비디오머그가 동영상으로 제작했습니다.
이 사진들은 서울 청계천박물관에서 <제정구의 청계천 1972-1976>란 이름의 전시회에서 26일까지 공개합니다.
기획: 맥스 / 편집: 김경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