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이 넓은 땅에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없다니...” 한 숨을 쉬지만, 대책은 없다. 내 집 마련은 누구에게나 평생의 꿈이지만, 언제 실현될지 불확실한 게 현실이다. 전셋집이라도 구할 마음에 부동산 중개소를 찾지만, 남의 속 모르는 중개사는 “장화 신고 들어가서 구두 신고 나올 수 있다”며 구매를 종용한다.
“죽을 때까지 땅 한번 못 사면 바보고, 평생 살면서 내 집 마련 못하면 더 바보”라는 말에 추가 대출까지 받을 생각도 하지만 언감생심,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또다시 한숨을 쉰다. 이렇듯 대다수 시민들은 가족과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집(home) 한 채 가지는 게 소망이지만, 그 집이 다른 누군가에겐 수시로 사고팔 수 있어 자산 불리기의 주요 수단인 주택(house)이 된다. 바로 부동산 투자다.
내 집 마련이란 시민의 소망을 대변할 국회의원들에게 부동산은 거주의 장소일까, 투자의 수단일까. 아니면 투기였을까. 의원들의 속마음이 어떤지 알 길은 없다. 또 방식만 정당하다면 투자는 욕망의 건강한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투자의 얼굴을 한 투기가 됐을 땐 상황이 달라진다. 19대 의원들에게 부동산이 투자인지 투기인지는 그들 스스로가 제일 잘 알겠지만, 분명한 건 내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의 현실과는 달랐다.
● '4500억 원대 부동산 재벌' 19대 국회…새누리당 압승
S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19대 총선(2012)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소유한 부동산을 전수 조사했다. 당선 시기와 가장 근접한 시점인 2013년 3월 공개된 재산 등록 변동 사항을 기준으로 했다. 20대 총선을 앞 둔 시점에서 우리가 2012년 4월 11일에 뽑은 그 당시와 가장 유사한 19대 의원의 부동산을 낱낱이 살펴보기 위해서다.
재산 등록 당시 국회의원은 294명으로, 이 중 임야, 대지 등 토지와 주택, 오피스텔 등 건물, 즉 부동산을 하나라도 소유하고 있는 국회의원 281명(전세 제외)이었다. 이들이 보유한 토지와 건물의 액수, 즉 부동산 재산의 합은 신고가액으로 4,470억 원이다. 예금, 유가 증권, 호텔 회원권, 차량 등 다른 자산이 포함되지 않은 순전히 ‘부동산’만으로 산정된 금액이다.
특히 공직자 신고 재산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실제 거래가는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실제 액수는 크게 늘겠지만, 신고 된 19대 의원의 부동산 재산(4,500억 원)만으로도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 사업비’와 맞먹는다.
의원 1인 당 부동산 평균 재산도 상당하다. 의원 1인 당 평균 부동산 재산은 15억2천만 원으로,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1가구 평균 부동산 자산인 2억3000만 원보다 7배 가까이 많은 규모다. 통계청 발표의 경우 소수자산가들의 과다한 부동산 보유로 평균 값을 상승시켜서 현실을 반영치 못하는 ‘평균의 함정’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통 시민들이 가진 부동산 재산보다 많게 계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의원들과의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각 정당 별로 구분했을 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차이는 상당했다. 4천5백억 원대 부동산 중 새누리당은 3300억 원(74%),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은 1125억 원(25%)을 차지했다. 무소속이 25억 원, 옛 통합진보당이 13억 원으로 뒤를 이었고, 정의당이 7억2천만 원으로 꼴찌였다.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전체 의석(300석) 중 50.6%(152석)을 확보해 민주통합당(42% 127석) 등 야당(148석)과의 대결에서 신승했지만, 부동산 비중에선 야당을 압도적으로 이긴 셈이다. 부동산 자산 규모로 봤을 때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보다 약 3배나 많은 3,300억 원으로, 새누리당 의원 1인 당 평균 부동산 재산은 21억 원, 민주통합당 의원 1인 당 부동산 재산은 9억 원이다.
● 에버랜드 4배 '국회의원 랜드'…부동산 재벌 '국회 그룹'
부동산을 대지, 임야 등 ‘토지’ 그리고 주택, 사무실 등 ‘건물’로 구분해 살펴보면, 의원들의 ‘부동산 사랑’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19대 의원 중 토지를 보유한 의원은 176명으로 이들이 가진 토지를 모두 합치면 5.88 ㎢다. 이 면적이 대략 어느 정도인지 느낌이 오지 않을 사람이 많을테다. 익숙한 단위인 ‘평’으로 바꿔보자. 178만평이다.
여전히 느낌이 오지 않는가, 그렇다면 한번 쯤 가봤을 법한 용인에버랜드를 떠올려보자. 에버랜드의 면적은 약 45만평으로, 이른바 ‘국회의원 랜드’는 이 보다 4배 더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국회의원이 모여 있는 여의도를 기준으로 하면, 여의도 면적(4.5㎢)의 1.3배로, 200여명의 의원들이 여의도와 에버랜드보다 더 큰 땅을 가지고 있다.
면적에 있어서도 여야 차이는 확연했다. 전체 면적(5.88㎢) 중 새누리당은 68%(4.0㎢),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은 30%(1.8㎢)를 차지했다. 새누리당이 2.2배 정도 많은 건데, 액수로 바꿨을 땐 새누리당이 더욱 압도적이었다. 19대 의원들의 토지(5.88㎢)는 공시지가 기준 114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이 949억원(86%), 민주통합당이 195억원(17%)을 차지한다. 면적보다 액수에서 차이가 더 큰 건데, 이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보유한 부동산의 면적 당 가치도 민주통합당보다 높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새누리당 의원의 부동산 투자(또는 보유) 능력이 남달랐고, 면적이나 가격 측면 모두 다른 정당이 따라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부동산도 지역주의?…"땅 사는 데 지역주의가 어디 있나요?"
19대 의원들이 소유한 토지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지역주의 선거 판세와 흡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새누리당 소속의원들은 경남에 139만㎡, 울산에 19만㎡, 부산에 14만㎡ 등 당의 지지 기반인 곳에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전남에 32만㎡, 전북에 13만㎡ 크기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민주통합당(현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은 대구, 부산, 울산 3개 지역에선 단 한 평의 땅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쯤 되면, '부동산도 지역주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반전은 있다.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은 경북에서 단 1석의 의원도 확보하지 못했지만, 소속 의원들은 토지는 67만㎡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경북에서 보유한 37만㎡보다 2배나 많은 크기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전국 16개 시도 중 경북에 가장 많은 땅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새누리당은 19대 총선 당시 전남에서 당선된 의원은 한 명도 없었지만, 소속 의원들은 13만㎡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 선거에선 지역주의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부동산 소유에선 영남이든 호남이든 지역은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 의원들은 전국 16개 시도 전역 중 한 곳도 빠짐없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남다른 ‘땅 사랑’을 보이고 있다.
가장 땅 값이 비싸다는 서울에서 새누리당은 3만1400㎡ 토지를 보유하고 있어, 민주통합당(1500㎡)보다 20배나 많았다. 최근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제주에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각 각 3만㎡를 보유하는 등 비슷한 규모로 집계됐다.
●의원들의 '건물 사랑'…아파트 1200세대 규모
‘동메달 100개보다 금메달 1개’, 아무리 넓은 땅이 있어도 건물 한 채 만 못하다. 19대 의원들은 이런 속설을 몸소 실천해주고 있다. 19대 의원의 부동산을 분석해보면, 알짜는 역시 ‘건물’이었다. 토지와 건물을 합산한 부동산 재산 4,500억 원 중 건물 비중은 73%(3,330억 원)에 달했다. 면적으로 볼 땐 토지가 4.5㎢로, 건물 면적(0.13㎢)에 비해 40배 넓지만, 액수는 1,100억 원으로 1/3에 불과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2013년 당시 전체 의원 294명 가운데 집, 오피스텔, 빌딩 등 건물을 한 채 이상 보유한 의원은 275명이다. 2채 이상 보유자만 전체 의원의 63%인 186명이다. 또 3채를 보유한 의원은 49명, 4채를 보유한 의원은 47명이다. 이들 의원이 보유한 건물 수는 모두 695채로 의원 1인 당 평균 2.3채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집 한 채 갖기 힘든 게 현실이지만, 이런 현실도 국회 정문에선 멈춘 것이다.
토지에 이어 건물에 있어서도 여야 차이는 선명했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보유한 건물은 410채, 야당은 285채로, 새누리당의 압승이었다. 정의당, 옛 통합진보당 등 야당 중에선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이 273채를 보유해 제1야당으로서 위엄(?)을 보여줬다. 정당별 평균을 살펴보면 새누리당 의원 1명당 2.6채, 민주통합당 의원 1명당 2.2채 수준으로 집계됐다.
19대 의원들이 보유한 건물 가치는 3,330억 원으로, 앞서 언급 했듯이 건물이 부동산 재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이 가운데 2,359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 뒤로 민주통합당 929억 원, 무소속 23억 원, 옛 통합진보당 12억9000만 원, 정의당 7억 원 순이다. 새누리당이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어 건물 보유 개수나 가격 모두 야당이 필적할 수 없는 압도적 승자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집중'…1인 당 주거면적 14배
국회의원들은 그동안 다양성을 대변하지 못하고,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지만, 그들이 가진 부동산만큼은 다채롭다. 각양각색의 건물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695채 건물 중엔 아파트(335채), 단독주택(91채), 상가(75채), 오피스텔(36채), 연립주택(32채), 다세대 주택(20채)은 물론, 주유소와 공장 같은 대형시설(17동) 등도 있어 의원들의 건물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었다.
695채 건물의 면적을 합산하면 130,608㎡(0.13㎢)다. 3만9500평 정도인데, 33평 아파트 기준으로 1,197세대가 살 수 있는 크기다. 19대 의원 1명 당 평균 440㎡(133평)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발표한 국민 1인 당 주거 면적은 32㎡(9.6평)이다. 14배 차이가 난다.
19대 의원들 건물 위치를 분석해보면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체 695채 중 294채가 서울에 있고, 지역을 경기도(130채) 인천(24채)으로 확대하면 모두 475채로 전체의 68%가 수도권에 쏠려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엔 새누리당이 167채, 민주통합당(현 더울어민주당)이 122채로 여야 가릴 것 없이 서울에 상당한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의원들의 부동산…외면 받는 현실
투자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라고 한다. 돈이 없으면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투자를 하고, 여유 자금이 있으면 투자를 해서 더 큰 돈을 만지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19대 국회의원들이 4천5백억 원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들을 비판할 수 만은 없다. 그들이 투자와 투기 사이를 오가며 남다른 부동산 사랑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19대 의원들을 바라보며 괴리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국회의원의 부동산 현실과 시민의 부동산 현실이 너무나 차이가 난다. 시민들은 잠깐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월급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고, 투자는커녕 은행 빚을 갚는 것도 힘든 자신들의 현실을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걱정한다. 이는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다. “저런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느냐”는 국회의원 본연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왜 국회엔 시민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없을까. 바꿔 말해보자. 왜 시민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뽑지 않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은 각 조직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 가는 마지막 자리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특히 보수든 진보든 각 정당에서 후보자를 공천 할 때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로 채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민전 교수는 “선거 때만 되면 기업 대표, 대법관, 고위 공직자, 유명 인사 등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이 공천을 받는다”며 “각 정당은 이들의 사회적 성공이 정치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처럼 환호하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어 “사회에서 대우를 받고 누리는데 익숙해진 이들이 자신의 이익에 벗어난 정책을 만들기는 힘들다”며 “수천억 원대 부동산을 소유한 의원들이 국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봉사를 하고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국회가 ‘성공한 사람의 종착지’가 되면서, 시민의 현실이 외면되는 그들만의 국회가 됐다는 뜻이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인턴)
디자인: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