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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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사람들의 마음 속에 큰 상처를 남겼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 날, 광주의 참혹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던 기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위험천만한 곳에서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그는…… 푸른 눈을 가진 외국 기자였습니다.

기자 신분으로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던 그는 광주의 참상을 독일 NDR 방송으로 보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언론이 통제됐던 상황에서 한국 소식을 전 세계로 알리는 메신저가 됐습니다.

이 사건을 국제적인 이슈로까지 끌어올린 기자의 이름은 '위르겐 힌츠페터'. 그는 당시 일본특파원으로 도쿄에 있었습니다.

독일 제1공영방송에 카메라기자로 일하던 그는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다가 부상을 당한 뒤, 도쿄지국으로 옮겼습니다. 여느 날처럼 일본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던 1980년 5월 19일 라디오를 듣다가 이웃한 한국 광주에 계엄령이 내려진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곧바로 짐을 싸서 다음 날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광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계엄군에게 직장 상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끝내 광주로 진입했고, 끔찍한 참상의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

철저하게 가려졌던 광주 시민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민주화운동 초기 현장 영상은 대부분 그 때 힌츠페터가 남긴 영상입니다. 

민주화운동 발발 나흘 뒤인 22일, 그가 찍은 영상이 유럽전역에 보도됐고, 전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하지만 국내 군부세력은 국제전화까지 막으며 이 사실을 감추기에 바빴습니다. 그렇게 1980년 9월, 전두환은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힌츠페터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곧바로 광주민주화운동 실상이 담긴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을 제작했습니다. 힌츠페터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전두환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 압박이 이어졌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 선고도 철회됐습니다. 

힌츠페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고발은 계속 이어갔고, 1986년엔 광화문 시위를 취재하던 중 폭행을 당해 목뼈와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 사실을 말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그의 유언은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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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질환 등을 앓았던 그는 고된 투병 생활 끝에 지난 1월 2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 일부는 광주 망월묘역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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