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미생 시즌2 첫 책 출간…'스스로를 목격하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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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 그 두 번째 이야기

“초라해… 못 견디겠다.”

미생 시즌 2에서 ‘장그래’는 오차장이 세운 신생 중소기업 ‘온길 인터내셔널’의 막내다. 점심으로 배달해 먹은 김치찌개 국물이 복도에 줄줄 흐르자, 장그래는 이걸 걸레로 닦다가 이렇게 말한다. 

미생 시즌2의 첫 종이책이 나왔다. 온라인 연재는 지난 해 말부터 시작됐지만, ‘책은 역시 손에 들고 봐야지’ 하시는 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시즌2 첫 책 출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윤태호 작가는 이 대사를 ‘시즌 1’, 그리고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대사로 꼽았다.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대기업 ‘원인터내셔널’에 몸담았던 장그래는 특히 드라마 안에서는 후반부로 가면서 업무 능력도 내적인 면도 크게 성장했는데, 그 장그래는 잊어달라는 의미다. 

그렇다 보니 일부 게시판에는 어둡고 우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태호, 꿈도 희망도 없지’ 라는 글이 나오기도 하는데, 시즌2를 하면서 중소기업이 나오다 보니 자비심 없는 스토리텔링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가 꾸며서 되는 부분이 아니라, 중소기업 자체가 알면 알수록 처절해요. 무역보험공사 가서 실제로 상담을 참관한 적이 있는데, 원하시는 게 간절하고 대기업에서는 저절로 되던 일들이 안되는 것이 있고, 회사의 치부를 드러내 가면서 질문하고.”

시즌 2는 이렇게 중소기업의 경영부터 결혼적령기 주인공들의 고민까지 총3부로 앞으로 3년 동안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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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각 전담부서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영업하던 사람들은 독립했을 때 매커니즘을 잘 모르지만, 중소기업은 회사 내에서 모든 것들을 다 알게 되잖아요. 또 대기업은 ‘보고서’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을 꾸미거나 감출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옷을 벗고 전장으로 나가는 격이죠. 수치심, 자격지심을 땅에 내려놓고 일을 해야 하는, 눈치껏 채워 넣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작품도 작가도 시즌 1을 시작할 때와 비교할 수 없게 유명해진 상황이다. 총 9권으로 이뤄진 미생 시즌1은 지난 2013년 9월 완간돼 230만부가 팔렸고, 올 하반기에 게임도 출시된다.  “시즌 1 할 때는 워낙 취재도 거의 안됐고, 10회 정도 됐을 때에야 회사원들을 소개받았어요. 연재할 때도 100~200개 안되는 댓글이 달렸고, 고통스럽게 시작했습니다."

"시즌 2는 조금 나아질까 생각했는데, 만화를 안 본 드라마 팬들과 만화만 본 분, 두 가지 다 본 분들, 새로 온 본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해서, 댓글란에서 다채로운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기도 한데, ‘미생’이란 작품이 다른 글에서도 인용이 많이 되고, 단어 자체가 쓰임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값(대가)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어요.”

미생 1에서 장그래는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쉽다는 반응도 많았다. 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정규직이 되면 ‘완생’이냐는 말과도 닿아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인생이 ‘해피엔딩’이냐..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다고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인생은 아니잖아요. 이 작품도 등장인물 각각의 어깨에 페이소스가 얹혀서 가겠죠. 우리는 양손에 다 들고 있잖아요. 행복과 불행을. 이 작품은 불행과 행복을 다루지 않고 ‘풍경’을 다루는 작품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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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패’의 작가?

윤태호 작가는 ‘내부자들’까지 영화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소위 ‘불패 작가’로 불린다.

“저는 땅에서 떨어져 있는 이야기를 별로 안좋아해요.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실재하는 이야기 같은 느낌과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중시해요.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사람 같거나, 연극적인 톤, 작위적인 말이 아니라, ‘진짜 이렇게 말했을 것 같은’ 대사. 특히 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장면은 언어적으로 더 현실감을 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과 가까운 이야기로 생각을 하지 않나 싶어요.” 

특히 ‘미생’은 자신에게 있어 ‘바위에다 이름을 새겨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끼’가 영화와 되며 이름이 알려졌을 때, 없어졌던 이름을 찾아준 작품’이라고 말했는데, 미생은 ‘바위에다 이름을 판 것 같은 느낌”이에요. 어지간히 악의를 가진 사람이 시멘트로 바르기 전에는 남아 있을 것 같은 느낌. 저뿐만 아니라, 저와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고, 특히 많은 사람들이 같이 먹고 사는 작품이 됐다는 점에서 고맙게 생각해요."

"저는 영화의 경우 내부시사를 들어가서 가편집본을 볼 때면 항상 마음 속으로 생각해요. ‘제발 영화 잘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이들이 한 가정을 일구는데..’ 라고요.  저 역시도 가족이 있고, 제 책을 찍어서 영업하는 출판사가 있고, 매니지먼트 누룩미디어가 있고, 화실의 문하생들이 있고, 그들이 모두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들에게 넉넉한 값을 주고 싶고, 그들의 노력을 보상해주고 싶고, 비용 면에서 고통 주고 싶지 않은 게, 미생을 통해 채워졌어요. 미생은 저를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들어준 작품입니다.”

소위 ‘대세 작가’의 ‘맞수’는 누구일까?

“제게 맞수는 지금 만화계 시스템인 듯해요. 굉장히 다채롭고, 작가에게 변화를 강요하는 현실이 제게는 미션입니다. 상황 자체가 미션인 거죠. 시스템이 자꾸 도망가니까. 과거 만화가 책으로만 찍을 때는 대각선 배율만 맞추면 되는데 지금은 안에 어떤 움직임, 음악, 효과음을 넣을지까지 고민해야 하고. 또 전자책으로 낸다면, 팔릴 가능성이 있는지, 어떤 기능을 더 구현해야 하는지도 고민이고. 시스템은 자꾸 도망가고, 저는 점점 나이들고 있어서 두려워요.”

그러나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다양한 시도에 대한 욕심이 많아 보였다.

“온라인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 친화적인 면도 있지만, 국경이 없다는 점이에요. 만화는 순문학보다 번역의 관용도가 높고 그림의 보조를 받을 수 있으니까 해외 진출에 욕심이 납니다. 특히 제 작품은 국내 기반 작품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외국에서도 읽힐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큰 목표예요. “

미생은 알려져 있다시피 올 하반기 게임으로도 출시된다.

“미생에 나오는 설정이 게임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번 게임은 차기작, 차차기작을 게임으로 하기 위한 경험치를 쌓는 게 목표예요. 목표를 어떻게 할까 확인해보는 거죠. 예전처럼 만화연재-책 찍고-인세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모든 채널 열려 있을 때, 한 작품이 어디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는지 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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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올 가을에는 새로운 작품도 선보인다. “남극 관련 만화를 올 가을부터 연재를 시작해요. 만화 뿐 아니라 드라마, 음반,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도 동시에 추진해서 제작에 들어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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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누구보다 더 뛰어나야 하나?

윤태호 작가는 최근의 노동법 개정 움직임 등에 대한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능력’으로 평가하자고 하는데, 꼭 누구보다 더 뛰어나야 하나요. 왜 그렇게 계량화시켜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윤 작가는 미생 시즌 2를 통해, 타인의 삶을 목격하게 만들고 싶고, ‘저기 내 모습이 있구나’라고 느끼게 하게 싶다고 한다. 미생 시즌2 (미생 시리즈로는 10권) 앞부분에 실린 작가의 말 중 이 대목은 그래서 특히 오래 마음에 남는다.

"현실의 신입들은 그렇게 유능하지 않고, 현실의 선임들은 후임에게 그만큼 애틋하지 않고, 현실의 간부들은 그처럼 공정하지 않으며, 현실의 임원은 거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직장인 판타지를 그린 이유는 애초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한 공간에 모였으며, 무엇을 하려고 했고, 무엇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내하는가에 대해 그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많은 부분을 들어내서라도, '일'에 몰두한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는 어째서 그 '일'조차 잘하기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얻고 또는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미생' 시즌 1과 마찬가지로 저는 직장인들의 삶에 위안이나 위로를 던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감히 제가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제가 목표하는 것은 단 하나. 만화를 통해 스스로를 목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 미생 10권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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